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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할 수 없는 사월 / 권영안

덕 산 2024. 4. 27. 08:56

 

 

 

 

 

 

동행할 수 없는 사월 / 권영안

 

호젓한 길 전봇대 위에 앉은

늙은 까마귀 외로운 까닭을 알 것 같다

산은 버거운 듯 푸르게 기울어지고

산 목숨들 침묵하는 산 아래

나는 너른 들판에 서서

동행할 수 없는 사월을 바라보고 있다

 

푸른 옷 입은 산더미 속

얇은 입술 잘금 씹고 있는 진달래

한적한 철길가로 무료히 조는 민들레

살금살금 잎을 피우는 목련

또 그렇게 슬며시 고개를 든 사월을 보고 있다

 

지워내도 다시 돌아오는 계절

죽음의 관 속에 갇힌 채 소리를 잃은 사월

무거운 정적 흐르는 거리

힘 잃은 한 무더기 봄만 나뒹굴고

지금은 살아있어도 지워진 시간일 뿐

봄의 전령으로 넘쳐나는 거리엔

혼절한 사월만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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