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 빌어먹을 코로나....

덕 산 2024. 3. 12. 09:00

 

 

 

 

 

아~!  빌어먹을 코로나.... 

 

오병규 2024-03-08 07:57:01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죽기 살기로 살아온 거 같다. 크지도 않은 사업이 쫄랑 망하고 거의 도피성으로 중국으로 진출했을 때 얼마간은 길이 안 보여 암담(暗澹)했었다. 그저 그렇고 그런 시간이 흘러 갈 때 우연히 고생하는 아내를 위한 특별한 선물을 했고 그것으로 아이디어를 얻고 180도 엉뚱한 아이템으로 전환한 후 지금은 산골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아내를 사랑하라! 그리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나니...오병규 복음에서)

 

암울(暗鬱)한 그 시기에 하루를 마감하고 잠을 청하려 누우면 도무지 호흡이 거북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어찌 그렇게 잠이 들고 깨어나면 또 아무렇지도 않고. 또 어떨 땐 까맣게 잊어버렸나 하면 또 증상이 나타나곤 했었다. 호흡 좀 제대로 해 봤으면...호흡만 그런 게 아니라 숨을 쉬면 쌕쌕하는 바람 새는 소위 천명(喘鳴)과 함께 가래도 끓고 한다. 그런 증상을 밀레니엄 이전이었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나는 죽을 수 없어. 못 죽어! 죽지 않을 거야! 수천 번도 더 다짐 했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 고생하는 아내와 3남매를 그런 식으로(쫄망의 후유증)몰아 넣고 나 혼자 편안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생활고로 가족동반자살 하는 가장(家長) 놈들은 제 혼자 편하자고 죽는 가장 비겁한 놈들이다. 죽으려면 제 혼자 죽던지...)

 

그래서 그런 곤란함을 겪으면서도 아프단 소리를 입 밖에 낼 수 없었고 병원도 찾을 수 없었다. 병원에 가면 어딘가 많이 망가졌거나 그렇게 돼 가고 있다고 선언할 게 분명할 것이고 그 순간 나 자신 나를 감당할 수 없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조바심 때문이었다.

 

근데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 때가 40대 후반 때였는데 나는 그 때까지 병원이라는 곳엘 가 본 기억이 딱 한 번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독감인지 뭔지 지독한 고열로 사경을 헤매 일 때 엄마 등에 업혀 병원에 갔던 그 기억 단 하나. 그리곤 병원과는 인연이 멀었고 그리될 수밖에 없는 사연은, 정말 믿기지 않겠지만 주사바늘이 무서워 병원을 찾지 않았던 것이다.(그 때만 하더라도 의약분업이 안 되어있던 시절이라 어디가 아프면 자가진단하고 매약(買藥)으로 견뎠다) 아무튼 미련했거나 우직했거나....^^큭..

 

은행 부채며 친. 지인에게 진 빚을 다 청산하고 새로이 조그만 빌라를 한 채 사고 얼마지 않아 큰딸아이와 연애 중이든 지금의 큰사위는 의료 관계업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인가 나의 식습관에 문제가 있다며 병원엘 자꾸 가라는 것이었다. (속으로) 저 놈이 내가 주사바늘을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줄 모르고...그러든 어느 날(난 그 때도 중국에 상주 하고 있었고..)귀국을 했더니(그야말로 꽤 비싼)나와 아내 부부동반 종합검진예약 티켓(?)을 가져와 억지로 안기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내의 강권도 있고 그것으로 종합검진을 받고 중국으로 되돌아갔는데 얼마 후 아내로부터 자꾸 잠시 귀국하라는 것이었다.

 

볼 일도 있고 귀국을 하자, 이건 뭐지? 집안 분위기가 냉랭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인데 도대체 이 분위기는 뭐지? 그런데 아내는‘자기 재검을 해야 된데...’라며 말끝을 흐린다. 순간 집히는 데가 있다. 그 분위기 하며.... 답답했던 호흡은 그 때까지도 여전 했었는데 또 그런대로 참을 만 했으니까. 그래서 다짜고짜“나 암이구나? 그렇지?”하며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그것도 개구 진 어린애처럼. 그러자 아내는 죽상이 되어“그렇데요 위암”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곤란해 폐암인 줄 알았는데 웬 위암?

 

폐암이든 위암이든, 난 정말 겁을 먹거나 놀랍지 않았다. 이젠 나 없어도(그 땐 아이들 대학졸업 다 시켰고 작지만 집도 마련했고 무엇보다 빚이 없었으니까), 저희들 노력에 따라 먹고살아갈 기반은 마련해 준 것 같은 안도감 때문에 주사바늘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위 4분지3을 절단하고도 살아 있음에 조상님께 감사하고 행복했었다. 그 게 벌써 16년째다.

 

뭐 그렇다고 마냥 행복하고 즐겁기만 하면 세상이 재미없어 딴 생각이 들 즈음 재작년 갑자기 담낭 암이 또 걸렸네. 다행히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지 않아 1차 담도를 넓히고 반 년 뒤 쓸개를 떼어냈던 관계로 또 배를 째고 말았다. 그래서 난 지금 쓸개 없는 놈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위도 잘라내고 쓸개도 떼어내고 암 수술을 두 번 씩이나 했음에도 숨 쉴 때 천명과 가래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으니 그 답답함이란. 사실 그 동안 그 답답함을 알아내기 위해 이 땅에서 제일 크다는 S병원과 몇 군데의 호흡기내과의 검진을 받았지만 이렇다 할 병명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흡은 더 답답하고...차라리 통증이 낫지 숨쉬기가 불편한 건 영....죽을 맛이다.

 

코로나가 기성을 부리기 시작한 1월 어느 날 도저히 답답해(호흡) 또 다른S병원 호흡기내과의 검진을 받고 CT촬영을 해 본 결과 기관지확장증과 폐에 종양이 3개 그 중에 하나는 9mm란다. 그러나 암인지 아니면 악성종양인지는 이것으로 판독하기 힘들단다. 5월초에 MRI 한 번 찍기로 예약했다. 두 번의 암 수술이 나를 대범한 인간으로 만든 모양이다. 호흡이 답답해서 그렇지 결과에 따라 또 배 째자고 하면“배 째라!”라고 할 참이다. 까이꺼 머...이젠 나 없으면 더 잘 먹고 잘 살 텐데...사실 위의 쓰잘 데 없는 썰이 오늘의 주제는 아니다.

 

검진을 받고 병원을 다녀오던 날, 나는 평소 늘 직접 운전을 하고 병원엘 가는데 당시 병원이 주차장 확장공사로 주차가 용이치 않아 택시를 이용했고, 귀가 즉시 위층에 사는 둘째딸과 쌍둥이가 보고 싶어 문을 열어주기에 쌍둥이를 껴 앉자 딸년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아빠! 대중교통 이용하고 병원엘 다녀 오셔가지고...”라며 아주 괴물취급을 하는 것이었다. 내 더러워서 참말로....

 

머쓱하고 무안하고...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본 즉 딸아이의 얘기가 틀린 게 아니다. 잠시 후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온다.“아빠! 다음에 병원 가실 땐 차 가지고 가세요. 요즘 대중교통 이용하는 게 더 위험해요. 하필 이럴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고...”말끝을 흐리지만 저는 저 대로 섭섭했을 것이고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 주 병원 가던 날, 딸아이의 얘기대로 차를 직접 몰고 갔다. 역시 주차하기 쉬운 아래층은 만차다. 보안요원이 위로 또 위로 자꾸 위로 소라껍데기 같은 주차장을 뱅글뱅글 돌며 올라가는데...옴마~! 조수석 쪽 범퍼가 무엇에 글키는 소리가....간신히 공간을 찾아 주차를 시키고 살펴보니 에그머니~! 범퍼에 심하게 찰과상을 입었다.

 

난 그 순간이나 지금이나 호흡이 답답한 거 보다 내 애마의 찰과상이 더 아프다. 자랑이 아니라 정말 많이 비싼 애만데...저 놈 외과치료비가 꽤 나올 텐데....치료비를 둘째에게 반은 물려달라고 할까? 지금 난 고민에 빠졌다. 이게 다 어쨌든 코로나 때문이다. 아~! 빌어먹을 코로나....

 

202238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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