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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의 약속 / 박정만

덕 산 2024. 3. 9. 09:23

 

 

 

 

 

초봄의 약속 / 박정만 

 

겨울 가면 아득한 길이 있다고,

이 말씀 없었으면 나는 죽었지.

그런데 산뻐꾸기 저물어 봄날이 가도

가야 할 길은 산 속으로 묻혀 갔으니.

그냥 하루 해도 저물어 갔네.

물론 애달프고 서러웁게 지고 샜지만

간다는 저쪽 길이 너무 아득하여서

꿈길 밖으로 꿈길 밖으로 걸아만 갔네.

누구 죽었다는 혼령이여,

왜 나는 미친 듯이 걸아야 하고

들창 밖 새소리 하나마저 놓쳐야 하나.

새소리는 그토록 어여쁜 무지개를 가지고 있는데.

저쪽 숲에서였지.

어둠이 꼬리를 감추는 저녁 무렵,

내 고요한 창변을 흔들고 지나가는

귀울림의 지독한 하늘에 앞서

만산이 무너지는 산비둘기 울음을 들었던 것은.

물론 행운이었어.

온다 하던 그대 초봄의 옥색 치마에

바람꽃 무늬 하얗게 처질러지고

없는 길은 그렇게 또 맞물려 갔지.

때없이 생각만 빗물에 누워

이 소리 저 소리로 야국 한 송이를 다 적셔도

국화꽃 피는 때는 너무나 멀고

잠결에 있는 것은 매화 한 틀,

서늘한 적삼으로 뒤꽂이 선연한 매화잠만 보았지.

가다가 외로우면 새벽잠을 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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