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가을벌초를 하면서

덕 산 2023. 11. 16. 09:27

 

 

 

 

 

가을벌초를 하면서 

 

정재학 2023-11-10 15:16:30

 

부모님 산소에도 만추 (晩秋 )의 쓸쓸함이 낙엽과 함께 쌓인다 . 작은 풀 하나까지 악착스런 생명으로 살아남기를 , 경쟁하고 다투던 지상 (地上 )의 모든 것들이 호흡을 거두고 멈춰 서있다 .

 

벼를 벤 들은 참으로 허전한 공간으로 남아있다 . 가시덤불 사이 사는 작은 새들 아니면 , 산봉우리 높은 곳 위를 날아오는 북녘 새들 외에 날개 있는 것들은 모두 남쪽으로 떠났다 . 귀뚜라미 소리 또한 그쳐 있다 .

 

어머니 , 산소 묘비를 쓸어본다 . 잔디 몇 포기가 솟아난 것을 낫으로 베고 , 풀을 치운다 . 추석 후에도 풀을 벴으니 , 더이상 풀 벨 것은 없다 . 다만 눈 내리기 전  , 어머님 산소에 따뜻한 손자국을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

 

겨울이 오면 , 얼마나 추우실까 . 찬바람 일어나는 들판에 사람그림자 없는 적막함이 또한 얼마나 견디기 힘드실까 .

 

부모님 생전 그토록 불효하던 가슴이 찌른 듯 아파온다 . 젊은날에도 효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 그때는 이토록 애 끊는 정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삶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 돈과 명예 , 권력과 부 (富 )보다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더 소중히 여겼었다 . 선택에 대한 의지를 더 깊이 생각하였던 피 끓는 날들이었다 .

 

사랑하고 놓아주고 , 미워하고 싸우던 것이 자유로움의 전부였다 . 부모님에 대한 효 (孝 ) 역시 , 이제는 하나뿐인 선택으로 남았다 . 세상의 일이 끝나가는 지금부터 효를 해야 할 때인 것이다 .

 

어머니 아버지 , 풀 한 포기를 걷으면서도 쓰라린 한숨이 솟는다 . 다시 태어나면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 그 어떤 생명으로도 다시 사랑하고 번식하는 일생으로 살고 싶지 않다 .

 

말없는 돌장승 , 어머님 곁 문인석에 스며들어 산소 곁에서 천년을 있었으면 한다 . 아니면 시비 (詩碑 ) 하나 세워서 부모님 곁에 무궁한 세월 , 예쁜 시 (詩 )를 읊어드리며 천년을 지냈으면 한다 .

 

마음대로 살아온 자유로운 영혼이 날개를 접고 부모님 곁에 있고 싶은 마음 . 이제는 떠나지 않고 , 날지도 숨쉬지도 못하는 돌로 남아 어머님 곁에 함께 있고 싶은 마음 . 영혼일지라도 결코 떠나지 않으리라 싶다 .

 

항상 그렇듯이 턱을 괴고 부모님 산소에서 석양을 맞는다 . 산소까지 따라온 강아지 반자도 말없이 앉아있다 . 망부석처럼 그냥 앉아서 주인을 지켜보고 있다 .

 

산소 안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반달이라는 강아지도 누워있다 . 강아지 반자도 죽으면 , 이곳에 묻힐 것이다 . 어느 떠도는 영혼이 이곳을 찾아오더라도 , 생전처럼 번함없이 반달이가 짖고 반자가 짖어줄 것이다 .

 

돌아오는 길 . 사람 형용을 한 불효 (孝 )한 그림자 하나와 주인을 따라오는 강아지 그림자 하나가 있다 .

 

 

2023. 11. 9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