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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에 펄펄 / 최정례

덕 산 2023. 8. 14. 09:43

 

 

 

 

 

팔월에 펄펄 / 최정례 

 

팔월인데 어쩌자고 흰눈이 펄펄 내렸던걸까

어쩌자고 그런 터무니 없는 풍경 속에 들었던 걸까

 

창문마다 흰눈이 펄펄 휘날리도록

너무 오래 생각했나 보다

네가 세상의 모든 사람이 되도록

세상의 모든 사람 중에 하나가 되어 이젠

얼굴조차 뭉개지고

눈이며 입술이며 머리카락이며

먼지 속으로 흩어지고

 

비행기는 그 폭설을 뚫고

어떻게 떠오를 수 있었을까

소용도 없는 내 조바심

가 닿지도 않을 근심을 태우고

 

오늘은 자동차에 짐보따리를

밀어넣고 차문을 닿았는데 갑자기

열쇠가 없었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망치 소리같은 게

철판을 자르는 새파란 불꽃같은 게

나를 치고 지나갔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길을 되짚어 다니면서 물었다

 

무엇이 할퀴고 지나간 다음에야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묻게 된다

 

달리는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면서

바람도 없는데 서 있던 나무는

갑자기 이파리를 부풀어 올리고

 

그 때 어쩌자고 눈발은 유리창을 때리며 나부꼈나

세상에 열쇠라는 것은 없다

가방도 지갑도 머릿 속도 하얗게 칠해지면서

 

여름의 한 중천에서

흰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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