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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 이기철

덕 산 2022. 10. 2. 12:02

 

 

 

 

 

시월 / 이기철

 

'시월' 하고 부르면 내 입술에선 휘파람 소리가 난다

유행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맨드라미들이

떼를 지어 대문 밖에 몰려와 있다

쓸쓸한 것과 쓰라린 것과 서러운 것과 슬픈 것의 구별이 안 된다

그리운 것과 그립지 않은 것과 그리움을 떠난 것의 분간이 안 된다

 

누구나를 붙들고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이

이마에 단풍잎처럼 날아와 앉는다

연록을 밟을 때 햇빛은 가장 즐거웠을 것이다

원작자를 모르는 시를 읽고 작곡가를 모르는 음악을 들으며

나무처럼 단순하게 푸르렀다가 단순하게 붉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고요한 생들은 다 죽음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다녀올 수 있으면 죽음이란 얼마나 향기로운 여행이냐

삭제된 악보같이 낙엽이 진다

이미 죽음을 알아버린 나뭇잎이 내 구두를 덮는다

시월은 이별의 무늬를 받아 시 쓰기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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