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 (宵火)고은영
신록의 그 여름
깊은 산자락에 걸터앉아
비 내리는 여름 수채화를 그렸지
풍경마다 열리던 그 여름 전설
진종일 질펀한 사랑에 여치와 매 아미가
앵 앵, 따갑도록 사랑 놀음에 골 깊은 숲
끝없이 펼쳐진 도라지 꽃
길섶에 빠알간 산딸기
삽시간에 지나가는 소나기
어지럽게 번지던 물감
빗방울, 진창으로 젖는 가슴
설레다, 설레다 죽어도 산이 되고
수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목이 길어 슬프다던 짐승이 산다는 곳
긴 하루 햇살로 길을 내어
소나기 지날 때 첩첩 이라
초록이 더욱 푸르고
지나가는 노인의 곰방대에 빛의 너울마다
그리움 빠끔, 빠끔 수증기를 피우며
연지 꼰 지 꽃 분 발라 호랑이 시집가는 날
달구어지던 영혼의 갈기에
순백의 달큼한 산 딸기 향
혓바닥에 길게도 사정하던
오감에 묻은 행복한 성욕
전이되는 어떤 사유도 그곳에서는
초록의 수액만을 뱉어내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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