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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 무릎 / 문정희

덕 산 2022. 4. 29. 13:40

 

 

 

 

민들레의 무릎 

              - 문 정 희 -

 

오늘 부드러운 깃털의 혼으로

허공을 날아다니던 그녀가

지난봄 길가에 앉아 먼지를 뒤집어쓰고

좌선을 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나무들이 지상에 초록 등뼈를 세우고

물속에 수초들이 유리성을 짓는 동안

그녀는 낮은 땅에 얼굴을 대고

떠나간 사람들이 땅속에서 보내오는

소리를 들으며 깊은 슬픔에 잠겼었다

 

어느 나이가 되면

결혼도 자식도 버리고 집을 떠나

마치 부처처럼 가벼운 몸을 만든다는

천산 고원의 사내들처럼

봄이 무르익을 즈음

그녀는 꽃도 의자도 버리고

노랗고 신비한 미소를 호흡 속에 모으고

가벼이 일어섰다

 

깊이 꺾인 무릎이

홀연 깃털의 혼으로 일어설 때

그녀가 앉았던 자리에는

방금 다비를 마친 듯

흙더미 조금 고슬할 뿐

풀밭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무 흔적이 없었다

 

- 문정희 “나는 문이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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