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에 태여 날 때,
세상에서
꼭
무엇을 해야 한다든지,
또한
이 땅을 언제
꼭
떠나야 한다든지 하는
계약서를 들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에 와서 무엇을 하든지,
언제 가든지,
그저 움직이며
왔다가 가면 된다.
더욱이
세상에서 쓰던 물건가운데
어렵게 장만한 좋은 물건 하나쯤이라던가,
남을 괴롭히던 내 욕심 하나쯤
들고 와도 된다는 언질도 없다.
그러니
한세상 사는 목숨의 길이가 다하면,
먼 길 가는 여정을 되도록 가볍게 가느라고
모두 빈손으로 떠난다.
올 때에는
신이 나서 큰소리로 울기도 했지만
갈 때에는 무엇인가
허전하기도 하고
겁도 나서
입을 꼭 다물고 간다.
돈도 내지 않고 살다가는 인생인데도
나이가 드니
이것 저것
다 빚으로 남는다고 생각이 되지만,
빚 갚을 여력도 없게
몸은 약해지고
운신의 폭도 좁아진다.
활동 할 수 있는 영역도 좁아져
친구들이나
혹은 가깝거나 먼 친지들의
초대받은
반가운 그 길도
점점 가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이치를 미리 알았다면
누구나 한평생을 이리 뛰고 저리 뛰거나
혹은 서서 일만 하지 않고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면서 편하게 살아 왔을 것이다.
눈 붉혀 따져보거나
열 손가락을 꼽아가며 계산을 해 보아도
잡정(雜情)만을 인생에다 보태면서
은거초지(隱居草地)를 향하여 걸어온 셈이다.
그것을 착각하여
나는 서정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고,
잡정을 가엾이 여기며
나를 위로 해 준 사람을 친구라던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인생에는 계약서가 없으니
갚아야 할 일도 없고
지켜야 할 조항도 없다.
그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는
증명서 한 장을 위조해서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놓고 가면 된다.
그러면 산 자들은
죽은 자를 향하여
훈장을 짤랑짤랑 흔들 듯
미사여구를 늘어놓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들의 귀거래의 글귀가 되는지도 모른다.
오는 길이 있으면
가는 길도 있고,
젊음이 있으면
노쇠(老衰)도 있다.
산은 산에 그대로 있으되
강물은 흐르면서
사계절을 바쁘게 끌고 가며
산 색깔을 철 따라 바꾸어 놓고,
하늘은 그대로 있으되
해는 가다가다
아픈 다리 뻗으며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세월이다.
아무리 재촉을 해도
흙은
사람을 따라가지 않지만
세월 가면
사람이 흙을 따라가서
흙속에 묻히니
그때에
사람들 발 밑에서 짓눌리던 산천이
바람소리를 내며 웃을 수밖에.
그러나
어둠이 깔리기 전의 황혼은
어디서나 아름답다.
황혼이 지천으로 뿌려대는 아름다운 빛을
우리말로 노을이라 부르기에
나는 그 노을을
노을(老乙)이라고 말하여 왔다.
젋음 다음에 오는 천간(天間)이 노쇠(老衰)이고,
그 노쇠가 땅에 묻히기 전,
마지막으로 발하는 아름다운 광채가 노을(老乙)이라고
나는 늘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노을의 광채는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하지 않는다.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노을은 꼭 바라보아야 한다고
노을이 채근하지도 않는다.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말없이 보여 줄 뿐이다.
--- 좋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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