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황혼 길에 서 있는 사람들

덕 산 2012. 8. 30. 20:57

 

 

 

 

 

 

사람이 세상에 태여 날 때,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한다든지,

 

 

 

또한

 

이 땅을 언제

 

 

떠나야 한다든지 하는

 

계약서를 들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에 와서 무엇을 하든지,

 

언제 가든지,

 

그저 움직이며

 

왔다가 가면 된다.

 

 

 

더욱이

 

세상에서 쓰던 물건가운데

 

어렵게 장만한 좋은 물건 하나쯤이라던가,

 

남을 괴롭히던 내 욕심 하나쯤

 

들고 와도 된다는 언질도 없다.

 

 

 

그러니

 

한세상 사는 목숨의 길이가 다하면,

 

먼 길 가는 여정을 되도록 가볍게 가느라고

 

모두 빈손으로 떠난다.

 

 

 

올 때에는

 

신이 나서 큰소리로 울기도 했지만

 

갈 때에는 무엇인가

 

허전하기도 하고

 

겁도 나서

 

입을 꼭 다물고 간다.

 

 

 

돈도 내지 않고 살다가는 인생인데도

 

나이가 드니

 

이것 저것

 

다 빚으로 남는다고 생각이 되지만,

 

 

 

빚 갚을 여력도 없게

 

몸은 약해지고

 

운신의 폭도 좁아진다.

 

 

 

활동 할 수 있는 영역도 좁아져

 

친구들이나

 

혹은 가깝거나 먼 친지들의

 

초대받은

 

반가운 그 길도

 

점점 가기가 힘들어진다.

 

 

이런 이치를 미리 알았다면

 

누구나 한평생을 이리 뛰고 저리 뛰거나

 

혹은 서서 일만 하지 않고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면서 편하게 살아 왔을 것이다.

 

 

 

눈 붉혀 따져보거나

 

열 손가락을 꼽아가며 계산을 해 보아도

 

잡정(雜情)만을 인생에다 보태면서

 

은거초지(隱居草地)를 향하여 걸어온 셈이다.

 

 

그것을 착각하여

 

나는 서정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고,

 

잡정을 가엾이 여기며

 

나를 위로 해 준 사람을 친구라던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인생에는 계약서가 없으니

 

갚아야 할 일도 없고

 

지켜야 할 조항도 없다.

 

 

그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는

 

증명서 한 장을 위조해서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놓고 가면 된다.

 

 

 

그러면 산 자들은

 

죽은 자를 향하여

 

훈장을 짤랑짤랑 흔들 듯

 

미사여구를 늘어놓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들의 귀거래의 글귀가 되는지도 모른다.

 

 

오는 길이 있으면

 

가는 길도 있고,

 

젊음이 있으면

 

노쇠(老衰)도 있다.

 

 

산은 산에 그대로 있으되

 

 

강물은 흐르면서

 

사계절을 바쁘게 끌고 가며

 

 

산 색깔을 철 따라 바꾸어 놓고,

 

 

하늘은 그대로 있으되

 

 

해는 가다가다

 

아픈 다리 뻗으며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세월이다.

 

아무리 재촉을 해도

 

흙은

 

사람을 따라가지 않지만

 

세월 가면

 

사람이 흙을 따라가서

 

흙속에 묻히니

 

그때에

 

사람들 발 밑에서 짓눌리던 산천이

 

바람소리를 내며 웃을 수밖에.

 

 

 

그러나

 

어둠이 깔리기 전의 황혼은

 

어디서나 아름답다.

 

 

황혼이 지천으로 뿌려대는 아름다운 빛을

 

우리말로 노을이라 부르기에

 

나는 그 노을을

 

노을(老乙)이라고 말하여 왔다.

 

 

젋음 다음에 오는 천간(天間)이 노쇠(老衰)이고,

 

그 노쇠가 땅에 묻히기 전,

 

마지막으로 발하는 아름다운 광채가 노을(老乙)이라고

 

나는 늘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다.

 

 

노을의 광채는

 

사람들의 눈을 부시게 하지 않는다.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노을은 꼭 바라보아야 한다고

 

노을이 채근하지도 않는다.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말없이 보여 줄 뿐이다.

 

--- 좋은 글 중에서 ---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  (0) 2012.08.31
도움이 되는 삶   (0) 2012.08.31
인생의 소금   (0) 2012.08.30
원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뻔한 사람얘기   (0) 2012.08.3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0) 2012.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