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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의 속삭임 / 박종영

덕 산 2025. 12. 16. 17:21

 

 

 

 

겨울나무의 속삭임 / 박종영

 

잿빛 회색의 겨울이다

알몸을 드러낸 나무들이 몸을 비벼댄다

그나마 젊은 날 부대끼며 뭉쳐진

육질의 근육이 옹이로 박혀 견디고 있다

산줄기 언덕을 밀치고 숲에 드니

빛바랜 흰머리 날리는 억새꽃이 사무친다

이미 집 떠난 산새의 보금자리는

찬바람이 다녀갔는지 썰렁하고

가을 내내 순하디순한 향기 피워낸 풀꽃의 설렘이

마지막 어둠을 밝히며 안간힘이다

붉게 타오르고 싶어 안달인 겨울 동백이

푸른 기운 발갛게 동박새를 불러들이고

땅거미가 무섭게 찾아와 금세 어둑해지는 산골

산사의 풍경 소리 명부전 댓돌을 다독이고

지난가을 청명한 기운으로 아담했던 구절초

시간의 무덤을 향해 달리는 마른 꽃의 이별이 서럽다

지혜로운 이슬의 영롱함으로 빛났던 단풍나무는

누구의 영혼을 안고 사라졌을까?

새로운 봄을 위하여 한사코 해지는 쪽으로만

방향을 잡은발가벗은 나무숲

겨울나무들의 속삭임이 가릉가릉

첫봄의 기별을 실어 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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