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낙엽이제葉篇 二題 / 김춘수

덕 산 2025. 12. 3. 17:37

 

 

 

 

낙엽이제葉篇 二題 / 김춘수

 

 

眉壽 지난 이무기는 죽어서

용이 되어 하늘로 가고

놋쇠 항아리 하나

물먹고 가라앉았다.

지금 개밥 순채 물달개비 따위

서로 삿대질도 하고 정도 나누는

그 위 아래,

 

 

그가 그려준 산은

짙은 옻빛이다.

그런 산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볼 때마다 지긋이 내 어깨를 누른다.

없는 것의 무게다.

죄를 짓고

 

간이 크다는 것은

간이 바람맞았다는 그 뜻이다.

우스리강을 건너면서 라스코리니코프는

새삼 깨닫는다.

강을 다 건너자

으루나무숲을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온산을 울렸는데도 겨우

들쥐가 한 마리 죽어 있다.

죽음 곁에는 아무도 없다.

죽음은 제 혼자 울다가 바람이 되어

제 혼자 어디론가 가버린다.

시베리아는 너무 넓고 너무 춥다고

라스코리니코프는 새삼

깨닫는다.

눈 위에 철새들이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너무 寞寞하고

발이 너무 시리다고,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나무에게 / 성백군  (0) 2025.12.08
첫눈 오던 날 / 용혜원  (0) 2025.12.05
가을 낙엽 사라짐처럼 / 용혜원  (0) 2025.12.02
노란 잎 / 도종환  (0) 2025.12.01
가을 단상 / 김길남  (0) 2025.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