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충만 / 법상스님
밤 시간이 되면 습관처럼 TV를 켜거나
인터넷을 열고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그 긴 저녁 시간이 금새 지나가고
하루가 짧다고만 느끼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TV도 그렇고 컴퓨터도 그렇고
번거롭고 거추장스럽다고 느껴져,
TV도 꺼 놓고 컴퓨터도 될 수 있다면
자주 켜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녁 시간이
이렇게 평온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조용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뼛속 깊이까지 느껴 보게 됩니다.
정말 이 느낌이란...
이 고요한 시간에는
책을 보는 것도 번잡한 일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텅 비어 있지만
꽉 차 있음을 느껴 봅니다.
고요히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의례 심심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고요가 주는 평온을
누려 보지 못한 때의 일입니다.
이따금 고요가 주는 작은 외로움을 느낄 때
그때는 차 한잔으로 친구를 삼아도
이 마음 넉넉해집니다.
이 시간들은 이제 온전한
내 시간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내 지친 속 뜰을 챙길 수 있는
깊은 여유로움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온전히 나와 친구할 수 있는 시간으로...
내가 나를 맞이하며 내가 나와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소중하게
가꾸어 갈 생각입니다.
이런 시간 이런 공간 이런 시공의 적멸이
우리의 지친 영혼을
맑게 가꾸어 줄 것 같습니다.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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