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운명을 뛰어넘는 법 / 법상스님

덕 산 2025. 4. 17. 06:12

 

 

 

 

 

운명을 뛰어넘는 법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일까?

사주팔자는 바꿀 수 있는 것일 까,

아니면 고정되어 있으므로 바꿀 수 없는 것일까?

바꿀 수 있다면 과연 어느 정도까지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정해진 운명을 뛰어넘어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과연 내 안에 있기는 한 것일까?

불교에서는 여기에 대한 답변을 '업'으로써 설명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짊어지고 온 업이 무엇인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라는 현실을

어떻게 살아감으로써 과거의 업을 뛰어넘고

현재를 아름답게 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즉, 업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과거에 지은 행위라고 했다.

과거의 행위에 의해 지금의 현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현재의 행위에 따라 또다시 내 미래가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달라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 삶은

그 궤도를 수정해나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일 있을,

내년에 있을 삶의 궤도가 내 행위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있다.

 

그것을 운명이나 숙명이라 이름짓지 않고

업이라 이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운명이나 숙명은 바꿀 수 없는 것인 데 반해

업이라는 것은 언제든 바꿀 수 있으며

바꿀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순간순간 변화하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가.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행위에 따라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업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불교의 제행무상이라는 이치에 따르면 그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업이라는 것 또한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가 매일 달라지고 지속된다는 것은

받아야 할 업의 과보 또한 끊임없이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과연 어떻게 해야 정해진 업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업과 운명을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한다면

과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 것인가?

 

업을 변화시키는 첫 번째  실천 이  바로 선업, 즉 선행이요,

나눔과 보시행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삶을 온갖 공덕과 복덕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

선을 행하고 내 것을 내누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업을 뛰어넘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심이 되는 방법이다.

 

두 번째로 운명을 뛰어넘는 요소가 바로 수행과 명상이다.

마음의 욕망과 집착을 비우는 것,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탐진치' 삼독을 소멸하는 것,

판단과 분별을 쉬고 올라오는 모든 생각들을 묵묵히 지켜보는 것,

번뇌와 망상에 끌려가지 않는 것,

이기적인 에고와 아상을 타파하는 것,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해주는 것,

싫어하던 외모나 능력 등 내게 주어진 삶을

대 긍정으로 수용하는 것,

욕심을 하나씩 포기해나가는 것,

집착하던 사람과 물건들을 놓아주는 것,

아껴 쓰고 절약하는 것,

소박하고 청빈하게 사는 것,

내가 옳다고 고집했던 견해를 놓아버리는 것,

가슴을 활짝 열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

옳고 그르다는 생각과 차별들을 가만히 관해보는 것,

매일 아침 일어나 기도하는 것,

절 수행을 하거나 좌선을 하는 것,

때때로 지혜로운 삶의 스승님을 찾는 것 등등.

작은 비움과 수행, 생활 속의 명상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내 삶과 미래를 바꾸고 업을 뛰어넘는 근원적이고도 결정적인 요소다.

 

'지금 이 순간'에서의 선행과 수행 속에

업을 뛰어넘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수행자의 두 가지 할 일은

선업을 지음으로써 '복'을 증진시키는 일과

수행으로써 '지혜'를 증진시키는 일이다.

그 두가지는 오직 '지금 여기'라는 현재 속에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라는 현재를 다스리면

과거와 미래까지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언제든 마음을 돌이켜 '지금 여기'에서 시작한다면

수북이 쌓인 마른 풀이 성냥불 하나에 불타 없어지듯이,

수백 년 동안 어두웠던 동굴이 불빛 하나에 환히 밝아지듯이

어제의 모든 죄업은 일시에 소멸될 수도 잇다.

 

내 삶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

내 운명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

업으라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매 순간 업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업을 경이롭게 바꾸어나갈 수 있는

지혜와 복덕이 담긴 행위를 해나가고 있는가.

마음을 비우고, 소유를 나누는 행위를 해나가고 있는가.

작은 실천이 내 삶을 변화시키고 진화시킬 수 있다.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