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서경(夏日敍景) / 구상
1. 아침
산과 마을과 들이
푸르른 비늘로 뒤덮여
눈부신데
광목처럼 희게 깔린 농로(農路) 위에
도시에선 약 광고에서나 보는
그런 건장한 사내들이
벌써 새벽 논물을 대고
돌아온다.
2. 낮
`이쁜이'가 점심함지를
이고 나서면
`삽살이'도 뒤따른다.
사내들은 막걸리 한 사발과
밥 한 그릇과
단잠 한숨에
거뜬해져서 논밭에 들면
해오리 한 쌍이
끼익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난다.
3. 저녁
저녁 어스름 속에
소를 몰아
지게 지고 돌아온다.
굴뚝 연기와
사립문이 정답다.
태고(太古)로부터
산과 마을과 들이
제자리에 있듯이
나라의 진저리나는
북새통에도
이 원경(原景)에만은
안정이 있다.
반응형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 / 최영호 (1) | 2024.06.12 |
---|---|
심상찮은 초여름 / 권오범 (1) | 2024.06.11 |
여름 일기 / 이해인 (0) | 2024.06.09 |
이장님의 부부싸움 / 황인산 (1) | 2024.06.08 |
초 여름 / 임승훈 (0) | 2024.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