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평

내전과 실업 상처뿐인 조국… 416만명에게 희망을 쏘다

덕 산 2018. 7. 17. 11:21

 

 

 

 

 

 

조선일보 이순흥 기자

입력 2018.07.17 03:00

 

[2018 러시아월드컵]

크로아티아 주장 모드리치, 골든볼 수상자로 선정

 

높은 청년 실업률과 경기 침체, 불안정한 정치. 크로아티아는 지난 20년간 각종 몸살을 앓으며 인구가 6% 줄었다.

설 곳을 잃은 젊은 세대가 새 삶을 찾아 조국을 등졌다. 인구 416만의 유럽 소국(小國)은 웃는 날보다 얼굴

찌푸릴 날이 많았다. 그래서일까. 2018년 여름, 크로아티아가 러시아월드컵에서 쓴 '기적'은 단순한 축구가 아니라

그들 삶에 내린 한 줄기 희망이었다. 주요 외신은 "천국에서 크로아티아로 날아온 선물"이라고 전했다.

 

 

 

 

'잘했다, 수고했다'는 말에도 아쉬움을 감출 순 없었다. 기적을 꿈꿨던 크로아티아 축구 대표팀의 동화는 월드컵 준우승으로 마무리됐다.

16일(한국 시각) 열린 러시아월드컵 시상식(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왼쪽 금발) 크로아티아 대통령이

크로아티아 대표팀 주장 루카 모드리치를 위로하는 모습. /TASS 연합뉴스

 

 

 

크로아티아는 16(한국 시각) 결승전에서 프랑스에 24로 아쉽게 지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패했지만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보였다. 대회 전 골드만삭스 예측에 따르면, 크로아티아의 월드컵

우승 확률은 32국 중 20(0.6%)였다. 많은 전문가의 예측을 보란 듯이 뒤집은 크로아티아의 선전엔

'발칸의 크루이프' 루카 모드리치(33)의 공이 컸다.

 

대표팀 주장 모드리치는 이번 대회 팀이 치른 7경기에 모두 출전해 694분을 뛰며 2·1어시스트를 기록,

대회 최우수선수 격인 골든볼을 거머쥐었다. 그는 16강과 8, 4강 등 세 차례 연장 승부에서 지치지 않고

중원을 휘저으며 팀 전체의 투혼을 이끌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크로아티아 현지 분위기를 전하며

"모드리치는 이제 왕(king)이 아니라, (god)으로 불린다"고 했다.

 

 

 

 

 

 

모드리치는 운동선수치곤 왜소한 체격(172·66)이다. 하지만 두세 명의 압박을 쉽게 벗어나 동료에게

기회를 창출하는 '천재 미드필더'로 평가받는다. 이제는 세계 최고 선수지만 유년 시절은 불우했다.

또래가 그랬듯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으로 할아버지와 친척들을 잃어 난민 생활을 했다.

한때 영양실조를 겪었지만 오직 축구 선수 꿈을 키우며 동네 주차장에서 연습에 매진했다고 한다.

그는 결승전을 마친 후 "최선을 다했지만 승리하기에 조금 부족했다.

모두가 똘똘 뭉쳐 놀라운 일을 해냈고 역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크로아티아 대표팀엔 모드리치처럼 전쟁의 아픔을 경험한 선수가 많다. 이반 라키티치의 부모는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건너가 그를 낳아 길렀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시절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수비수 데얀 로브렌은 세 살 때

크로아티아인 부모와 독일로 강제 이주했다가, 다시 조국에 둥지를 틀었다. 크로아티아 국민은 어려움을 이기고

역사적 성취를 이룬 대표팀에 찬사를 보냈다. 콜린다 그라바르키타로비치 대통령은 월드컵 시상식에서 선수를

일일이 안아주며 위로했다. 결승전을 보려고 수도 자그레브의 반 옐라치치 광장에 모인 시민 수만 명은

경기 후 크로아티아 국가를 함께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크로아티아의 선전에 유고슬라비아 시절 '한 국가'였던 발칸반도 이웃도 반색했다. 유고 시절 마지막 축구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보스니아 출신의 이비차 오심(77) 감독은 "크로아티아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이건 우리(유고)만의 기질"이라고 말했다. 세르비아 출신의 테니스 스타 노바크 조코비치도 최근 크로아티아를

응원한다고 밝힌바 있다. 보스니아 정치 분석가 조란 크레시치는 AFP 인터뷰에서 "피 흘린 전쟁(유고슬라비아 전쟁)

이후 처음으로 보스니아가 크로아티아를 지지했다. 냉랭했던 발칸반도에 월드컵이 작은 온풍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 출 처 : 조선닷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