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겨울이다.
개울을 건너다
반쯤 물에 잠긴 돌이
온몸에 파란 이끼를 쓰고
다소곳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마침 겨울철 산방이 삭막하게 느껴지던 터라
그 주먹만 한 것을 방에 옮겨다 놓았다.
하얀 수반에 담아 놓으니
마치 토끼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따금 물을 갈아 주면서
한겨울을 우리는 사이좋게 지냈다.
내가 건네는 말을 돌은 잠잠히 듣고만 있었고,
돌의 침묵을 나는 마음의 귀로 받아들였다.
한겨울 우리 ‘토끼’는 숲을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창호로 비쳐 드는 햇살을 먹고 자랐다.
골짜기에 얼음이 풀리고
매화가지 끝에 꽃망울이 부풀어 오를 즈음,
우리는 작별을 했다.
겨울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 자리에 갖다 놓았다.
작년 겨울에도 그 돌은 나와 함께 한방에서 지냈다.
얼마 전 문득 그 돌의 안부(?)가 궁금해져 나는 개울가로 갔다.
그 돌은 저만치서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뜻밖에도 그 돌에 석창포가 여러 줄기 돋아 있는 게 아닌가.
이제는 갈데없는, 귀가 솟은 토끼였다!
정말 놀라운 생명의 신비였다.
삶은 이토록 깊고 넓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산중 생활에서 길어 올린 명상과 사색이
수식과 꾸밈이 아닌 실천하는 삶
그대로의 모습에 오롯이 담겨 있다.
무소유의 철학,
침묵과 홀로 있음,
단순하고 간소한 삶….
아마도 이 글의 가장 큰 미덕은
일상의 모든 일을 심오한 화두로 바꾸는
그 깊고도 단순한 지혜에 있지 않을까.
스님은 ‘과밀’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삶의 부스러기를 털어버리고
본질적인 삶을 이루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조촐하고 맑은 가난을 지니라고 말한다.
--- 법정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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