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내부 / 임동확
아무도 없으리란 걸 알고도, 바보처럼
뙤약볕 먼지 푸석한 긴 가뭄의 강둑길 걷네
행여 아직 거스르기 힘든 물살에 휩쓸려들까
갓 부화한 다슬기, 송사리 치어들이 떼 지어
몰려있던 황구지천 개울가로 걸어들어 가네
눈 먼 사랑은
여전히 각자의 운명을 떠맡은 채 말없이
흔들리던 아카시아, 버드나무 가로수를 지나
한사코 바다로, 바다로만 흘러가버린
강물처럼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 여름,
오로지 보랏빛 토끼풀 반지를 낀 소녀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 강변에 서 있네
아, 그러나 늘 짧고 아쉽기만 한
여름의 감각이란
쉴 새 없이 반짝이는 은빛 강물이거나
그 사이 찾아든 갑작스런 어둠 같은 걸까
이내 길 잃은 눈길은
가마우지들 서넛 젖은 날개 털며 쉬던,
그 강변의 한 가운데 마구 소용돌이치는 물목
그만 놓친 손길 길게 뻗어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흐린 강바닥을 어부처럼 더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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