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밤 / 안도현
저녁밥 일찌감치 먹고
마당가에 내려섰더니
난데없이 겨드랑이가 자꾸 가려워오는 것이었다
주뼛주뼛하다가 당최 참을 수 없어서
긁어대다 보니 어라, 내 몸에서
무엇이 군시렁군시렁거리며 돋아나기 시작하는데
가만히 보니
살구꽃이었다
날은 어두워오는데
살구나무는 무장무장 부풀어오르는데
식구들이 나를 찾을 것 같으니
꽃도 좋지만 나 이제 꽃 그만 피울란다, 생각하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 이렇게 온몸에 꽃을 매달고 서 있는데
나를 보지 못하고
싸가지 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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