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날 / 김문억
이 나이에 새삼
빌어야 할 무슨 소원 따윈 없지만
심심풀이 달맞이로
어슬렁 어슬렁 언덕에 오르던 저녁
귀머거리 코머거리
이목구비도 없는 미인
하늘님 무남독녀
만인의 연인이라는데
오늘은 쉬는 날인지 여지껏 안 나오네
분 화장이 늦었는가
늙은이라고 괄시하나
구름인지 안개인지
별은 뜬 것 같은데
궁시렁 거리면서 더듬더듬 언덕길을 내려와
늦은 귀밝기 술 한 잔 하고 나오는데
댕기머리 보름달이 구름밭을 써레질하며
내 머리 위로 훨훨 날아가고 있네요
올해는 시집간다고 거짓부렁 또 하면서.
세월도 그렇게 기다리는 마음을 속이면서
눈과 눈 사이로 어느 결에 흘러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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