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딴죽걸이와 돌부리..

덕 산 2020. 7. 14. 21:37

 

 

 

 

 

딴죽걸이와 돌부리..

 

김홍우(khw***) 2020-07-11 11:43:36

 

순수 우리말인 딴죽씨름이나 태껸에서, 발로 상대방의 다리를 옆으로 치거나 끌어당겨 넘어뜨리는 기술.”이라고 사전에 설명 되어있는 데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이고 술수이며 재간으로서 쉽게 말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기술로 힘으로는 이겨내기 힘든 적을 보다 용이하게 물리치기 위한 꾀이기도 하고 기술적 묘기이기도 하지만 그냥 일반 보편인식 상에서 이 말은 상대를 망하게 하기 위한 은밀한 술수의 모양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왜냐하면 이 딴죽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목적이고 쓰러졌다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서있는 상대에 대하여서 현격이 불리한 상황이 되었다고 하는 것으로서 겨룸에서 졌다라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곧 패배이기에 그 때부터는 패배자가 받을 온갖 수모를 각오하고 승자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다보면 내 삶과 나의 앞길 그리고 나의 행보마다에 그렇듯 딴죽을 걸으려고 하는 사람, 상황, 환경 그리고 조건들이 내 앞길에 방해물들이 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중에 어떤 것은 진솔한 말 몇 마디로 물리쳐 지기도 하지만 혹은 얼마간의 금전을 보상해 주는 것으로 해결 되는 것들도 있지만 그러나 또 어떤 것들은 기어코 나의 파멸을 보려고 그 살기의 작태를 거두지 않고 여전히 거듭 거듭 위협의 흉물을 휘두르며 씩씩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기를 멈추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일반 적인 것이 바로 돈이 거는 딴죽에 걸려 넘어지고 이성의 딴죽에 그렇고 하여 쓰러지고 자빠지는 모양들입니다. 재물이나 혹은 남자 혹은 여자라는 딴죽에 걸려 넘어지며 패가망신하는 것은 나이나 배움의 정도와도 상관이 없고 막강 권세나 재력으로도 쉽게 막아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은 역사에서도 세계사 속에서도 익히 증명되어진 바입니다. 그래서 언제라도 흔들림 없이 우뚝 서서 결코 쓰러지지 아니할 사람 같아 보였던 이도 어느 순간에 사상누각(沙上閣)처럼 무너져 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이미 여러 번 경험하였고 교훈을 얻게 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고 거기에 쓰러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여전히 보고 있자면 과연 그러한 류의 딴죽불패명성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만 갈 것만 같습니다. 특히 시대의 구분 없이 회자 되곤 하는 우리 사회 속의 예들을 살펴본다면 특히 남자들의 앞길을 막아서는 여자의 딴죽이라는 말이 많이 대두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남자들을 딴죽 거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듯 그 넘어지는 소리가 큰 경우들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아직까지는 대부분 남자들이기 때문입니다.

 

 

 

, 아랫마을 누구와 윗마을 누가 이렇고 저렇다더라 하는 것은 그저 놀림의 대상이 되거나 혹 사안이 확대되어도 경찰이 몇 번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손가락질 정도를 받으면서 마무리 될 수 있지만 사회적 명망을 갖추고 그러한 지위와 위치에 있는 사람의 경우라고 한다면 그러한 정도에 그치지 아니하고 우르르쿠당탕그 쓰러지는 소리를 크게 내기 때문입니다. 소리가 크면 시선들을 받게 되고 그 시선들이 곱지 아니한 다음에야 그렇듯 쓰러진 이를 향한 온갖 험담과 추문이 더욱 공격적으로 생성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 대부분은 그만한 위치와 자리에 있었던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있어서인데 그러한 자리에 있던 당신을 믿었는데하는 배신감에서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와 우리를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우리와 똑 같은 속물이었다니 하는 조소적 이율배반에서입니다. 즉 우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그러지 말아야 했던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이름도 자리도 없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을 늘 인지하고 주어진 의무로 마땅히 지켜야만 생존할 수 있는 것이며 혹 넘어짐이 있다면 그 소리가 그렇듯 크게 우리 사회를 진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딴죽을 거는 사람이 있어서 거기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또한 아무도 딴죽을 걸지 않았는데 그 상대를 스스로 걷어차거나 일부러 다가와 거기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상대는 마치 돌부리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도 그 곁으로 스스로 다가와서 걸려 넘어지는 경우 같은 모양이 있다면 그 돌을 일컬어 딴죽 돌부리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의도적 행위도 하지 않았고 그냥 그 자리에 늘 있었던 것뿐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넘어지고 무너지는 사람의 모양도 두 가지입니다. 누군가의 의도된 딴죽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과 자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이 딴죽이 되어 스스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짐에도 마치 딴죽 걸린 모양이 되어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특히 남녀 간에 이러한 일들이 적잖게 있는 것을 보게 되지요. 그래서 무조건 여자 쪽을 나무라는 남자들의 시선은 자각되어야 합니다.

 

 

 

과연 누가 딴죽과 돌부리의 역할을 하였는가.. 누가 걸어서 넘어졌는가.. 부주의하여 스스로 넘어졌는가.. 딴죽은 그 의도를 가지고 다리를 걸은 이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지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사람은 돌부리에게 책임을 지울 수도 그 돌부리를 재판정에 세울 수도 없는 것으로서 결국 주의하며 피하여 가지 아니한자신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살펴보면 남녀의 관계 속에서도 그 양쪽 누군가가 처음부터 딴죽의 앙심과 계획을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대부분이 처음에는 좋게시작을 하였지만 결과는 나쁘게된 것이지요.

 

 

 

거기에는 처음 같지 아니한어느 쪽의 심경변화의 모습이 그러한 배신의 모양에 동기 부여가 되어 그렇듯 나쁘고 험한 사태를 초래케 할 수도 있고.. 그러나 가장 핵심을 짚어내는 정답은 무엇으로이든 자신의 욕심의 팽배를 막아내지 못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거듭 말하거니와 그렇게 쓰러지는 소리가 크게 날 위치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다수는 여전히 남자들이기 많기 때문에 그를 그렇게 쓰러뜨린 모양으로 딴죽이 된 여자라는 오명을 쓰게 되고 이것이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입을 통하여 더욱 확대되어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과 뇌리에 그저 듣고 본 그대로의 모양으로 깊이 새겨지는 것이 되기는 합니다만,

 

 

 

그래서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남자들이 그 대가로 물어야 하는 세금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분명 잘 못 되어 진 것이며 정죄 받아 마땅한 것으로 지난 수천 년 이어져 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 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또한 누군가의 말처럼 그것이 이 세상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입지와 권세의 모양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본다면 과연 쉽게 이겨 낼 수 없다는 것으로서 당연하다 할 것이지요.

 

 

 

 

 

 

 

왜 쉽게 이겨내거나 물리칠 수 없는 것일까.. .. 정답은 그가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며 또 그가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논지에 모호함을 지적하여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는 오직 남자와 여자 두 가지로만 나누어져 있고 그 서로의 필요성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는 것에는 어떠한 이의도 공격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서로의 절대적 필요성은 그렇게 만드신 조물주 창조자 하나님의 전적의지이기에 그렇게 지어진 인간 어느 누구도 그 어떤 다른 변명을 말하거나 자기 편의적 당위를 만들어 말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것을 누리며 다만 그 편의와 유익성을 더 개발하여 증진해 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현재 주어진 날들을 가장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지혜입니다.

 

 

 

그렇듯 남자와 여자는 그 선천적 생태적 필요성따라 서로 결합하여 살아가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도를 넘어서는 것 때문에 그 스스로 딴죽꺼리를 만들어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발 앞에 덫처럼 놓아두게 되고 기어코는 그것을 밟고서는 그 아픔으로 울고불고 하게 되지요. 그 어리석음의 모양이란.. (그러나 우리 모두 그 어리석음의 일편을 가지고 있으니..) 그래서 과연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 것 인지.. 자주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영리한 것은 물론 주지의 사실이지만 그러나 또한 가끔씩 어떤 상황에서는 그렇듯 뻔히 드러나는 장차의 전개를 간과하고 온 힘을 다하여 그리로 매진(邁進)하는 그 미련함과 어리석음이란 과연 보는 이로 하여금 개탄과 탄식으로 혀를 내두르며 긴 한숨을 쉬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이성(異性)에 대한 주의와 경계심을 늘 갖추는 것으로 남자는 여자로부터 여자 또한 남자로부터 자칫 그 딴죽과 돌부리의 모양이 될 수 있는 상황과 조건에서 자신을 지켜내는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딴죽이란 여자도 남자도 재물도 권세나 지위도 아니고 아니 그 이전에 욕구와 욕망을 실현하려고 발버둥 치는 욕심의 치달음이며 우리 모두는 이를 막아내야 하는 것이지요. 망하는 것이 거기에 있고 나의 소멸과 끝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야하고 또 늘 살기를원하는데 인간의 자연수명의 늘임과 연장이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늘 살아있어야 하는 것이 나이 들어 늙어가면서 무조건 적으로 오래 오래 사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오늘도 내 앞에 놓이고 또 나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딴죽의 모양으로 다리를 걸어오는 많은 것들의 미혹과 유혹의 딴죽걸이들을 잘 피하셨습니까? 또 긴 안목으로 저 앞에 돌출되어 나를 넘어뜨리려 하는 돌부리들에 대하여서도 그러하셨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내일도 그러시기를 바라며 평생이 그러하여 후회할 것이 없는 아름답고 건강한 복 받은 일생의 날들이 앞에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시는 이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 산골어부 2020710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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