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색 단상
김홍우(khw***) 2020-04-27 21:29:10
벌써 꽤 되기는 하였지만 언젠가 TV광고에 보니 유명 기업의 신제품 카메라를 선전하는데 전체적으로는 검은 색
계통이라고 할 수 이지만 푸른색과 붉은 색이 약간 삽입되어 조화를 이루게 디자인 된 것을 보았습니다. 카메라
뿐 만이 아니라 얼마 전 한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주변을 살펴보면, 고급 승용차, 남자 양복 등이 거의 모두 검은 색
계통이었습니다. 중형 이상이 되는 승용차들은 거의 검은 색이고 중소형 차들과 가장 작은 소형차도 검은 색을 칠하고(!)
다니는 차들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화면에 비추어지는 국회주차장에 주차되어져 있는 자가용들의 거의 모두 검은 색 계통 일색으로
그러한데 또한 국회 안의 모습을 보면 여자 의원들을 제외한 의원들 거의 모두가 역시 검은 색 계통으로의 어두운 색
양복들을 입고 있습니다. 의원들뿐만 아니라 어떤 모임이든 일단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모여 있는 모양들을 보면
대개가 검은 색 계통이고 목사님들의 모임에서도 양복들이 색상이 그렇습니다. 왜?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남자들은
‘검은색 계통의 양복’을 선호하게 된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120년 전 개항 초기 외국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왔을 때 그들 눈에 비친 조선 사람들의 옷을 모두 ‘하얀 색이었다’라고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키 크고 얼굴 하얗고 머리는 노란색인 데다가 눈은 파란 서양 사람의 모습을 보겠다고
부둣가로 몰려든 이들의 모습을 오히려 입항하는 선교사들이 카메라로 찍으면서 ‘백의군중의 운집’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하얀 무명 바지저고리입니다. 간혹 물감들인 옷들이 있기도 하였고 중국에서 고급
채색원단들이 들어오기는 하였지만, 대다수 서민들의 형편과는 거리가 멀었고 거기에 그렇게 나와 섰던 이들의
대부분이 서민들이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에게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가난했기 때문’
이라고도 하는데 전혀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즉, ‘좋아서’ 흰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없어서’ 그렇듯 가장 값이
싼 무명옷을 위아래로 입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또 거기에도 의미를 두어 생각해 보게 되는데 곧 ‘가난한 이들의
하얀 옷’이라는 명제를 만들어내면서부터입니다. 한 마디로 그래서 ‘하얀색은 빈궁(貧窮)의 색깔’이고 ‘채색 된 것은
부(富)의 색깔’이라면 그 모양이 상징하고 있는 바에도 시선을 돌려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혹 속이 하얀 사람은 삶이 빈(貧)하고.. 라는 의미를 두어야 할지.. 모든 색깔의 물감을 다 합치면 ‘검정색’이
되지만 세상의 모든 ‘빛’을 다 합치면 하얀색(투명색)이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낮의 빛 가운데서 사방을 밝히 보고 여러
위험들을 앞서 보고 피하기도 하면서 살아가는데 이러한 것에도 의미를 두어 본다면 우리들의 삶과 생활 속에 좋은
기름이 되어 줄 유익을 얻을 수도 있어 보이기는 합니다.
검은색은 무거운 색이며 검은 물건이 무게가 더 나가 보이고.. 그래서 심정적으로도 ‘묵직한 품위’의 모양을 원하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에 의하여서 그렇듯 양복의 색깔과 승용차의 색깔들이 거의 모두 검은색이 되었다는 분석이
아마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 검은 색은 암암리에 드러내는 자기방어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묵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하는 암묵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지요. 즉, 만만히 보고 쉽게
근접하지 말라는 경계와 경고로서의 그것이기도 합니다.
남자들은 특히 ‘남자들끼리의 경쟁’에서 지기를 싫어하는 것이 본성이다 보니 무언가 강하고 쉽게 움직일 수 없어
보이고 또 있어 보이는 검은색으로 그렇듯 방어(防禦)막과 방호(防護)막을 친다고 하는 것인데 일면 틀리는 것
같지도 않기는 하지만.. 또한 가만히 생각을 하여보면 우리는 조상 대대로 ‘검은 옷’을 입고 살아오지는 않았다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초상과 장례의 때가 아니면 검은 옷이 일상의 상용의복으로
사용된 적이 없으며 임금님이 돌아가셨을 적에도 사람들은 더욱 더 하얀 옷을 입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이 검은 옷 역시 일제의 강점기와 연결이 됩니다. 우선 지금 나이 든 남자 된 이들은 자신이
초중고 학생시절에 무슨 색깔의 교복을 입고 지냈는가를 돌아보십시오. 검은 색이 아니던가요.. 교복은 검은 색..
물론 동복(冬服)으로 입은 것이기는 하였고 나중에 밝은 색 하복(下服)이 나오기는 하였지만 학생 모자인 교모(校帽)
만큼은 여전히 검정색으로 쓰고 다녔던 생각이 납니다. 이것 역시 한 십여 년 세월이 흐른 나중에 여러 가지
모양과 밝은 색으로 디자인 된 하모(夏帽)로 바뀌기는 하지만..
우리가 일본식 교복을 입고 일본식 경례를 하면서 일본식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 치욕의 전통이 해방 후에도
그렇듯 이어졌으며 일본인들은 물러갔지만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로 즉, 일본식 옷을 벗으면 당장 입을 것이 없다는
빈궁함에서 그리고는 그 역시 일제청산의 모양으로 털어내지 못한 민족혼의 뜨거운 분출이 부족하였던 때문에서 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왜색으로서의 검은 색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임금님으로부터 백성들에게 이르기 까지 ‘양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옷 우리 색깔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일상의 색깔에 그 정신문화의
모양과 설정의 근본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고 우리는 그렇게 백의(白衣)로의
우리 색깔들을 뒤로 하고 흑의(黑衣)로의 왜색으로 우리 사회 곳곳이 장식되어지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좀 있는 모양새’를 갖추려 한다면 양복과 우산 등은 물론 자동차의 색깔들도 검은색으로 하여 타고 다니게
되었던 것이지요.. 여기서 ‘좀 있는 모양’이란 위세의 모양을 말하는 것으로 황제부터 면사무소 서기와 경무국이하
경찰서 파출소의 순사들의 제복들이 검은색 일색이었던 것에서 유래하지요 검은 색 제복에 반짝이는 단추 그리고 긴
사무라이 칼을 옆에 찬 ‘나까무라’순사는 ‘아기의 울음도’ 멈추게 하는 대단한 위압의 존재였지요.. 저 어릴 적만 하여도
경찰이라는 말 보다는 순경 순사라는 말이 더욱 많이 쓰여서 “말 안 들으면 순사가 와서 잡아 간다.”는 위협과 협박성
말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하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랜 강점기 시절 속에서 입에 배인 말이고 몸에 배인 옷의 모양이니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우리의 민족혼을 살려내어야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 됩니다. 지금도 하얀 양복과 하얀 백구두를 신고
다니는 사람은 남들의 달갑잖은 시선을 받게 되고 멋쟁이로 불리기도 하지만 또 ‘날라리’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백의민족을 주창하면 웃음거리가 되는 세상이 이미 되었지만, 그러나 검은 양복은 ‘중후한 신사’라고 하지요.
물론 양복(洋服)이 곧 왜복(倭服)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나라에 본격 소개가 되었고 일상
의복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렇게 우리 선진들은 검은 색 의복에 잠식 되었으며 그 모습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들의 잠재 속에 남아있다고 한다면 너무 앞서 가는 것이라는 책망과 비난을 들을 수도 있겠습니다..
비록 우리들이 여전히 일본사람들과는 오랜 민족감정 아래 있다고는 하여도 말이지요.
“저기 저 차들 좀 보아요. 거의 전부가 흰색 차들이네요.”
멈춤 신호를 받고 사거리 차선 맨 앞에 서 있을 때 옆에 앉은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맞는 편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는
승용차들을 바라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그래서 허허 하면서 ‘백의민족’을 떠올려 보았지요. 백의민족이라서 흰색
차를 좋아하는 것일까 바야흐로 그간 잃었던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찾아져가는 것일까.. 불과 두어 달 전 일입니다.
해서 또 재미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느 결혼식장에서 한 아이가 엄마한테 물었다지요..
“신부들은 왜 모두 저렇게 하얀 색 드레스를 입어요?”
“응, 그래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마치 천사 같지 않니? 하얀색은 천사의 색깔이지..”
“그럼에 신랑들은 검정색 옷을 입어요?”
“.....?”
허허 요즘에는 흰색이나 밝은 색 계통의 양복을 입는 신랑들이 늘어나고는 있지만 검정색 예복을 따라 넘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것 같고.. 또 이 세상 어디의 어린이들이든지 천사를 그림으로 그릴 때에는 하얀색을, 마귀를 그릴
때에는 검정색 계통을 사용한다고 하는 것은 세계에 무슨 기구가 있어서 그렇게 하자고 국제적으로 무슨 회의를
하거나 해서 합의를 한 것도 아니고 보면 사람의 본성에는 하얀색이 주는 이미지와 검은 색이 주는 이미지의
구분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나오는 것 같고..
그렇다면 그렇게 색깔 이미지의 구분을 사람들 속에 불어 넣어주신 분이 사람과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임이 분명할 텐데..
그렇다면 우리들의 삶도 ‘하얀 삶’과 ‘검은 삶’ 중에서 선명한 선택을 하여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또 그렇다면
원래 ‘백의민족’이름을 가진 우리 한국 사람들이 훨씬 더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씁니다만 그렇다고 일본사람이나 서양 사람들이 흑의민족(黑衣民族)이라는 것은 아니고.. 다만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우리 사람들의 삶속에 미치는 영향이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어서입니다.
그런데 또 자동차 색깔의 변화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만약 당장 우리 사회에 ‘흰 양복 하얀 구두’로서의 백양복(白洋服)
신사들이 많아진다면 어쩐지 저 부터도 좀 이상할 것 같은데.. 그래서 이겠지요.. 성도들에게 ‘하얀 천사’같은 모습을
늘 강조하는 목사님도 입으시는 양복만큼은 늘 검정색 쪽으로이고.. 물론 아주 드물게 몇몇 목사님들이 하얀 양복을 입고
강단에 오르시기는 합니다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이겠지요.. 성도들의 반응이 환영일색은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무엇으로이든지 검정색을 피합니다마는 참 이상하게도 어느 교회를 가보든지 앰프와
벽에 걸려있거나 단상에 올려져있는 커다란 대형 스피커는 거의 모두 검은색이라서 허허 하게 됩니다.
그 역시 세월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기도 할 것 같기도 하지만.. 허허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그 시대의 그 사람’이라고
말들 하는 것이겠지요.. 그러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저 다만 바라기는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사회적 정답으로서의 ‘마음이 하얀 사람들이’ 다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서툰 전개의 글을 써 보았습니다.
- 산골어부 2020427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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