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세 갈래 길 (老人三路)
김홍우(khw***) 2018-09-22 11:41:51
어떤 글에 보니 사람이 늙어갈 수록 그 변하고 고착되어지는 면면이 다음 세 가지 중에 하나의 길을 가게 된다고 하는데
고개가 끄덕이게 되기에.. 휴.. 결국에는 누구나 다 되어지는 늙은이 후보자 된 이들에게 작은
교훈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 세 가지에 각각 토를 붙여보았습니다.
1 고집(固執)쟁이가 된다
즉, 자기 말이나 생각만이 옳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가족들과도 날마다
더 소원하여지기를 계속하면서 그야말로 ‘불통(不通)’의 모습으로 자신의 골방 문마저 자꾸만 더 꼭꼭 닫아놓는
고집쟁이 늙은이’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2 교활(狡猾)하여 진다
즉,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전제 아래 그 과정 중에 터득한 처세 가운데서도 오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에만
숙련이 되어 여전히 집중하면서 이익의 달성을 위하여 거짓말 같은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역시 뻔하고 비참한 길을 열어주는데 자기 곁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씩 하나씩 떠나가게 하고
그 자신은 진한 외로움의 고지로 달려가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3 지혜(知慧)로워 진다
즉, 해야만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자기 결심과 행보의 결과를 익히 잘 알게 되었으므로 무엇에
무리를 하거나 누구를 매도하거나 어떤 것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또한 자신 스스로 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역시 모나지 않는 방법으로 이해를 시킬 줄을 아는 사람으로서 모두의 화목을 이루는데 삶의
끝말까지도 일조하는 사람입니다.
휴... 그래요 깊은 한숨을 내어 쉬게 됩니다. ‘늙은이’ 라는 말은 나와는 평생 상관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환갑도 벌써 넘었고 내년 쯤 지나면 지하철도 공짜로 탈 수 있게 된다는 슬픈 기대(!)가 자꾸만 더 부풀려지고 있으니
허허 하는 심정입니다. 쯧, 그래, 남들도 다 가는 길을 나만 안 갈 수는 없잖아.. 안 가는 방법도 없고.. 하면서
자기 위로를 하여 보지만 적어도 내 이름처럼 걸어진 나이에 대하여서 만큼은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 어렸을 적만 하여도 60세가 되어 환갑잔치를 하면 ‘오래 사신다’라고들 축하를 하였습니다만 지금은 60세
환갑잔치를 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고.. 어디를 가나 늙은이 대우가 아니라 그저 조금 나이 든 젊은이 취급을 하여 줍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자리양보의 경우는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학생아이들이 양보를 하여도 크게
손사래를 치면서 사양하지요. 그 모습은 즉, 이제는 60대가 스스로를 노인취급하지 아니하고 쯧, 젊은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직은 장년시절을 지나고 있다는 자기 정의와 확신을 내심으로는 굳에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아마도 곧 평균 ‘백세 시대’가 도래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60대는 인생의 절반쯤을 막 넘어선 사람들이고..
노인과 어르신으로서의 대우와 대접을 받으려면 80세는 넘어야 하는 때가 지금 제가 여전히 살아 있는 동안에
올 것만 같습니다. 하긴 지금도 이 곳 산골마을에서 60대 란 ‘한 창 일할 나이’로 취급하고 또 마을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고 또 80대 즈음의 어르신들께서는 그들을 향해 ‘젊은 사람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래..
저 같이 ‘60대 할아버지’들을 어르신으로 모셨던 사람에게는 참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할 것입니다.
불과 반세기 전 저 어렸을 적만 하여도 당시 60대 어르신들 중에는 서당을 다니셨다는 분들도 있고..
학교로는 중학교 이상을 공부하신 분들조차도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읽거나 쓰실 줄을 모르시는
분들도 많아서 아이들에게 글을 읽어 달라거나 편지를 써달라거나 부탁하는 경우들도 많았지요. 하지만 그러한 것은
편리와 불편의 일은 될망정 행복과 불행의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몰라도 웃으며 몰랐고 알아도 웃으며
알았던 시절이었으나 지금은 모르면 한없이 부끄럽고 알면 상한선 없이 교만해지는 시대를 지나고 있으며 또한
재산도 재물도 마찬가지가 되어 없으면 부끄럽고 많으면 목에 힘을 주는 일들과 모양들을 날마다 수시로 보게 됩니다..
여기에서 상호불통(相互不通)의 모양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래서일까요.. 상기한 바처럼 ‘고집쟁이’ 노인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도 이러한 풍조에 기인하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쯧, 매우 안타까운 일들 중에서도
앞서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그러한 세상의 억압 풍토와 장치가 나의 현재 처지와 상황을 비하하거나 하는 경우이거나..
아니라면 혹 나의 인생 경험으로 얻은 것들을 최고의 법과 규준으로 여기기 때문인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는데
어느 것으로이든 이것은 만년의 불행을 자초하는 모양이 분명합니다.. 감히 말씀드리거니와
‘모든 행복은 모든 소통에서’ 비롯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지요.
또 ‘교활(狡猾)하여진다’ 라는 말처럼 비참하고 끔찍한 말이 따로 없습니다. 이것은 나쁜 쪽 악한 모양 쪽으로만
점점 더 발전(!)을 거듭하였다는 말에 다름이 아닌데 세상에 속고 시달리는 것으로 내 몰린 모양이기도 하며
그래서 오직 자신의 유익에 대하여서는 적극 이기적인 추구의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작은 불이익이라도 있게 될
경우 철저한 배타적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으로 이 역시 모든 선한 소통의 모습을 다 문 걸어 버리고
스스로 고립무원의 상태로 들어가 고독한 자리매김하고 있는 모양에 다름이 아닙니다.
‘노인이 되었다’라는 것은 삶의 결론지점에 이르렀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상기한 두 가지는 모두 불통의
자리를 애써 찾으며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년이 불행한 사람은 그 인생의 전체가 불행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지요.. 왜냐 하면 만년의 모양 속에 내려진 답과 결론이 그 전의 이론과 전개의 모양을 몽땅
덮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른 인생’을 살아가기란 외줄 타기와 같고.. ‘그른 인생’으로 살아가기란
그 보다 훨씬 용이하고 수월하다고들 하지요. 물론 그 역시 탄탄대로를 걷는 것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이용하고 누군가의 등에 얹어져 가는 것으로 ‘어쨌거나 편한 인생길’을 가려는 이들이 꼭 있습니다.
그래서 속이고 훔치고 빼앗고.. 때리고 죽이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지혜로워진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인생이 무엇인지 통달(通達)한 사람의 달통(達通)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쯧 그렇습니다. 무한히 작은 존재 하나로서의 인생이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다
알아버린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완성의 모양에는 결코 이르게 될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사람과 인생에
대하여서 관통함의 근간이 되는 관조(觀照)의 유력고지 정도에는 오르게 된다는 것 까지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일찍이 지금까지도 최고의 지혜자로 추앙 받는 솔로몬의 지혜서 잠언 말씀 중에도 계속적으로 인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과 ‘솔로몬의 인생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도서 역시 계속 주지시키고 있는 바는 “세상의 헛된 것들
좇지 말라”는 것으로서 즉, 인생길 앞에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헛된 것들과 헛된 일들이 많고 거기에
매몰되어 자신의 인생을 다 소모하고 허비하고 탕진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어짐은 21세기로 접어든 지금도 여전한 것이니 그러한 헛된 풍조에 휩쓸려서 어리석게도 ‘자신을 죽이는’
이들이 되지 말아야 하고 그러자면 사물의 이치와 도리를 잘 파악하고 분별할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되어지는데 바로
지혜(智慧)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로 필라소피 philosophy 곧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哲學)이고 태초(太初)와 궁극(窮極)을 살피며 따져 물어 알아내려 하는 것이 악하거나 나쁠 것은 없지만
이 역시 자칫 헛된 것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정답’은 알아내지도 알아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즉 탐구하는 정신과 연구하는 자세는 지식과 상식으로서의 분변을 갖게 하는 것으로서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선명한 결론을 찾거나 이르러서가 아니라 그 과정이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어주는 것이기에 따라서 정하여진
그 이상의 추구도 그 이하의 매몰도 아니어야 사람에게 양약이 되는 것이 바로 philosophy 곧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입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 백발의 면류관이 머리에 얹어진 노인이 되면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사물의 분별력에 있어서도
혈기 방장한 젊은이들과는 달라야 하며 그 마음 역시 세상을 향한 헛된 욕심을 원동력으로 하여 날마다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과는 현저히 다른 평정(平靜)의 경지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자신의 것은 물론 주변의 평화와 화목도 다 지켜내고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지요.
한 사람이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마지막 모습의 자기 연출이 ‘불통의 고집쟁이’여서도 안 되고 끝까지 탐욕의
노예로서의 ‘교활한 인간’이어도 아니 되며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격언처럼 느긋하고 멀리보고 당장에
경거망동하지 않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성경 속 ‘잠언’과 ‘전도서’를 깊은 심호흡으로 읽어 보실 것을 진심으로
권면 드립니다. 우리 모두 ‘사악한 늙은이’들이 아니라 ‘지혜로운 노인네’들이 되어서 만년의 행복을 한껏 누리십시다.
산골어부 2018922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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