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우(khw***) 2018-06-05 20:11:32
지난 1960년대와 70년대를 중고등 학생으로 지낸 사람이라면 그 ‘가차 없는 빡빡머리’에 한숨 좀 쉬어 보았을 것입니다.
당시 중고등 학생들은 거의 예외 없이 빡빡머리를 하여야 했습니다. 이것도 역시 ‘일제의 잔재’ 모양이 분명한데 왜
타파하고 청산하지 아니하고 그때까지 그렇게 지내도록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머리 스타일뿐만 아니라 교복도
그러하였고 월요일 운동장 조회 단체 체조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그 시절 우리 학생아이들은
‘일본학생’들과 같은 모양과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에 들어와서야 속도감 있게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율화’ 등의 조치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지요. 60년 중후반 허름한 이발소이거나 또는 산동네 골목길에서도 아이들이 목에서부터 흰 천을 두르고
이름 하여 ‘떠돌이 이발사’들의 짤깍짤깍 불란서 이발 기계 바리깡의 위엄과 권세 앞에 아무 소리 못하고 항복하여
머리를 내 맡겼습니다. 중고등 학생들은 물론이고 당시 초등학교 아이들 역시 그렇게 이발사들의 무자비한
권세의 폭군 바리깡 아래 얌전히 앉았고 부모들은 조금 더 이발 비용을 아끼려고 ‘빡빡’을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두발 빡빡’이라는 규정은 없었지만 버짐과 부스럼 그리고 기계충이라고 하였던 두부백선
같은 피부질병으로 인한 두피 상함의 모양들이 왜 그렇게 많았었는지 그냥 머리를 빡빡 밀고 진물이 흐르는 곳에다가
시퍼런 잉크색 약을 여기저기 바르고 다니는 것이 편했기에 그렇게 일부러 더 빡빡 깎기도 하였습니다. 쯧쯧,
참 어렵고 가난했고 모든 면에서 힘들었던 시절이었지요. 그래도 아이들은 그렇듯 ‘퍼렁머리’를 하고서도 술래잡기,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하며 열심히 뛰어 놀았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대견하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한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겠지요. 당시에 ‘도전자’ 같은 역작으로 어린이 만화계를 주름 잡았던 박기정님이나 박기준님 같은 분들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더벅머리 훈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빡빡머리였습니다. 동추, 구마, 몬도, 배뵤, 두통이,
진식이.. 등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만화 속에서만 활동들을 하여서 그런가? 그 친구들은 한번도 버짐이나
부스럼 난 머리 그래서 퍼런 잉크를 바르고 나왔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허허.
그때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전교생들 중에 집에 피아노가 있었던 아이가 1명, 냉장고가 있었던 아이가 3학년
우리 반 아무개 한 명 뿐이라고 들었습니다. 피아노는 음악시간에 교실로 옮겨다 놓은 풍금 비슷한 것이라기에
그렇겠거니 상상은 해보았지만 한 여름에도 열기만 하면 얼음이 쏟아져 나온다는 냉장고는 본적은 물론 그런 것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에 학교로 배달 온 하얀 우유를 한 병씩 마시기에
반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부잣집 아들 아무개였지만 그 냉장고가 머리 버짐과 부스럼을 막아내는
기능은 없었는지 역시 머리를 빡빡 깎고 퍼런 잉크(!)약을 여기 저기 바른 모습으로 한 동안 학교를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허허 시절의 공평함이지요.
베이비붐 시절에 선두주자들로 태어난 아이들이 교실 안에 바글바글 붐비어서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2부제 3부제
수업을 하곤 하였었는데 저의 반 번호가 늘 60번대 뒤쪽이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렇게 많은 전교생
남자아이들 중에 언젠가 한 때는 그러한 두피 질환이 크게 유행도 하여 거의 절반가량의 아이들이 저마다 그렇듯
퍼런 잉크를 바르고 다녔는데 다행이랄지 저의 두피는 모면을 계속하였기에 당시 어른 들이 말씀하시던
그 ‘잉크’약이 정말 잉크였는지 아니면 잉크 색깔이 나는 피부약이었는지 지금도 궁금합니다. 아마 후자였겠지요. 쯧.
쉬는 시간이면 늘 운동장 한편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던 여자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바짝 치켜 자른 단발머리 아래로
역시나 그 퍼런 잉크약을 바른 것을 보기도 하였는데 그래도 머리칼들로 가려주었던 덕분이겠지요, 남자아이들의
그것처럼 흔하지는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60년대 중반 즈음의 남자 아이들을 상징하던 모양과 장면들은
빡빡머리, 검정고무신, 바지 엉덩이에 덧대어 기운 빵떡(!)과 줄줄 흘러내렸던 누렁콧물이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단정 무쌍하고 깔끔 단정한 모습으로 한 결 같았던 아이들도 있기는 하였지만.. 허허.
고등학생은 물론 중학생만 되어도 슬슬 멋을 알아가는 때가 되는지라 아이들은 적나라한 두상골격의 뻔한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빡빡머리를 거부하고 어떻게 하여서든지 조금이라도 더 머리를 길러보려고 단속 선생님들과
재미있는 숨박꼭질 아닌 아슬아슬한 숨박꼭질도 하였습니다. 불시에 기율부에서 교실로 단속을 나오면 책상 밑으로
숨어보는 것은 기본이고 교단 탁자 밑으로 또는 아예 교실 문을 와르르 열고 와당탕탕 달아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좀 더 훗날인 70년대에 벌어졌던 공식 ‘장발단속’의 전초전의 모양이었다고나 할까요.. 쯧,
이발소에 가서도 빡빡 대신 ‘이부가리’ ‘삼부가리’라는 이름으로 한 1~2mm 더 길게 남겨둘 것을 주문하기도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멋을 알아가는 남자아이들의 강제와 제도에 항거하는 몸부림이고 발버둥이었습니다.
그때 만약 아이들이 “우리가 왜 일본 아이들의 머리 모양을 따라해야 하는가!!” 하면서 일본식 잔재의 청산을
외치면서 현수막이라도 들고 나섰더라면 그럴 듯한 명분도 있는 것이고 어른들도 답변이 궁색해 질 수 있었을 터인데..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었던지라.. 하긴 또 그러면 상투를 만들어 달으라고 하면 어쩔 뻔.. 허허.
국가적으로 ‘공업선진화’를 외쳤던 때인지라 공업고등학교 학생이라면 2~3학년쯤이 되어서는 일찌감치 기술연마를
위한 실습의 일환으로 구로동이나 인근 공장 같은 곳으로 나가서 펜치와 망치 등을 들고 여러 가지 기계들 다루는
것을 배우며 기름때 묻는 일들을 하면서 취직 또는 취직을 위한 준비들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실습생으로 나가게
되기를 바라곤 하였는데 그 첫째 이유는 약간의 실습비를 월급처럼 주는 것을 받아 용돈으로 쓰려는 것
그리고 둘째는 머리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이 더 할 수 없는 매력 포인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두상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빡빡머리.. 거기에 틀어 앉은 버짐, 부스럼, 기계충.. 그것을 가리려고 입은 옷이야
어떻게 되었던 늘 교모를 쓰고 다녔던 시절 속의 아이들.. 친구들.. 지금은 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물론 대부분은 은퇴를 하였겠지.. 그래 지금은 버짐도 부스럼도 찾기 힘든 시절이 되었으니 옛날 우리 소싯적
나이를 지나고 있는 손주들의 깨끗하고 건강한 머리들을 바라보면서 옛 생각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행복한 모양으로 다들 살아가고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산골어부 201865(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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