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개똥벌레 소회

덕 산 2018. 5. 17. 10:52

 

 

 

 

 

 

 

 

 

김홍우(khw***) 2018-05-16 06:07:03

 

그 이름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바로 반딧불이를 말하는 것임은 얼마 전에야 알았습니다.

반딧불... 이제는 참으로 보기 힘든 희귀 곤충 반열에 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저 어릴 적만 하여도 어스름

저녁때가 되면 인근 개천 변 버드나무 근처나 마을 우물가 앵두나무 근처에서도 그 주변을 반짝이며 날아다니던

녀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강원도 산골마을에 와서도 산기슭 근처에서 두어 마리 씩은 볼 수가

있어서 휙 잠자리채로 한 마리 잡아가지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이들과 함께 그렇듯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면서

반짝이는 모양을 신기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는데..

 

그런데 왜 개똥벌레를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반짝벌레라든가 등불벌레라든가 하는 이름들이 더 잘

어울리는 것일 텐데.. 혹시 그 이름이 붙여질 무렵에는 이 벌레가 주변에 너무 흔했던 것이 아닐까..

마을 주변 논이나 밭에서도 개천에서도 장독대 위에서도 초가지붕 위에서도 싸릿문을 넘나드는 모양으로도..

그래서 흔한 것의 대명사 개똥.. 개똥벌레.. 뭔가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지금은 개똥벌레와 함께

개똥도 보기 힘든 것이 되었지요.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라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똥이 흔하게 사방에 굴러다니던 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저 어릴 적만 하여도

그랬으니까요. 골목길은 물론 신작로에 나와도 여기 저기 개똥들이 아무렇게나 있었고 그 중에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오르는 놈도 꼭 있어서 코를 막으며 고개를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60년대 풍경입니다. 개들을 묶어야

한다느니 목줄을 꼭 해야 한다느니 하는 분분함도 없던 시절 집에서 키우는 개이든 떠돌이 개이든 그저 아무렇게나

어디든지 돌아다니던 때였고 그래서 그러한 개들한테 물리기도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제재를 가하거나 또 받는 일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허허 참 그런 때도 있었지.. 하게 됩니다.

 

팔이든지 다리이든지 아이가 개에게 물린 자국을 보여주면서 그 개 주인에게 따져 묻는 것으로 이웃 간에 얼굴

붉히던 소란의 모양들이 종종 있었던 시절이지요. 그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상처에 빨간약을 발라주면서

미안하다고 하면 상황이 끝나곤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에게 물리는 것이 매우 위험하기도 한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게 치료가 되었던 것을 생각해 당시의 사람들이 더욱 건강 체질이었든지 면역력이

있었든지 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긴 그때에도 보건부에서 광견병의 위험을 알리기도 하곤 하여서 개들도

예방주사를 맞히고 그 주사필증을 개목에 걸고 다니게 하였지요. 작은 타원형 알루미늄에

예방주사필이라고 써있었던가.. 하는 모양으로의 기억이 납니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올라가자면 두어 번 쯤을 개똥을 피하여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시절이었는데

기어코 한두 번쯤은 찔꺼덕 밟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난감해 한 적들이 누구나 있었지요. 서울 변두리 풍경이기는

했습니다만 사대문 안이라고 하여도 크게 또는 별반 다르지도 않았습니다. 그 시절 케이블카를 타러 남산에

올랐을 때에도 함께 간 어른들은 아무데나 앉지 마라 개똥 깔고 앉을라.”라고 주의를 주었으니 말이지요.

허허. 그 모든 지저분함도 세월이라는 녀석이 정겨움이라는 제목을 붙여주기도 하니 참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과연 반딧불이 개똥처럼 흔했기에 그렇듯 개똥벌레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당시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맑고 깨끗한 공기들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반딧불이는 조금이라도 대기가 오염 된

곳에서는 살지 않기에 지금은 깊은 산중으로나 들어가야만 그것도 어쩌다 만날 수 있는 귀하신 몸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글에 보니 반세기 전에 아이들이 누렁코를 많이 흘렸던 것은 그만큼 대기오염이 없었던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글쎄 그 방면으로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아무튼 비록 아직도 전쟁 후유증의 모습들이 곳곳에서 여전하여 삼천리를

뒤덮었던 포연의 내음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공기만큼은 지금처럼 오염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때 즈음부터 나오기 시작한 새나라 택시..코로나택시들로부터 본격 도시 매연이 시작된 것이라고나 할지...

 

지금 도심 뿐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너나 할 것 없이 미세먼지의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서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는 때가 되었고 한 두 개의 마스크는 가정의 상비품이 되어버린 것을 보고 있자면 누렁코를 휘날리면서도

해가 지도록 신나게 뛰어놀던 그 시절의 건강 환경이 그립습니다. 개똥 흔한 골목길을 뛰어 다니다가 어깨에서

무럭무럭 김이 올라오면 얼른 아랫동네 우물가로 달려 내려가서 벌컥 벌컥 우물물을 마시고 덜컥 덜커덕 열심히

뽐뿌질을 하면서 서로에게 시원한 등물을 해 주었던 여름날의 기억이.. 그래.. 그렇게 공기도 좋고 물도 좋았던 때였군요...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사는 사람이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라고 말들 하는데 허허 하기는 합니다만 온갖 공해에

쪄들지 않은 사람의 몸과 마음이 물론 건강하고 좋을 것이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골 사람들을 일컬어

순박한 사람들이라고 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다 지나가버린 옛이야기들이 되어 버린 것 같고...

 

정신없는 녀석인가.. 길을 잃은 녀석인가.. 어제 저녁 무렵에 휙하고 작지만 선명한 불빛 포물선을 그리면서

천 변 숲속으로 들어가 버린 녀석이 분명히 개똥벌레 반딧불이라고 생각하면서 개똥 많던시절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이제는 개똥도 소똥도 말똥도 다 귀해지고 변질 되어져서 소똥구리 말똥구리들조차도 개체 보존을 위한 수입을 해

와야 한다는 귀하신 몸들이 되었는데.. 우리의 개똥벌레들도 진즉에 그리하였어야 했던 것인지.. 개똥벌레 반딧불들이

휘휘 날아다니던 그 옛날의 아랫동네 우물가 앵두나무와 수양버들을 떠올리며 잠시 소회에 젖어 보았습니다.

 

산골어부 2018516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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