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흥서(khs***) 2017-08-21 21:05:30
빗줄기가 대단하다. 8월 중순을 지났는데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 한여름 억수로 퍼 붙던 그 빗줄기다.
강 건너 풍경이 빗줄기에 가려져 희뿌옇게만 보이는 것을 보면서 대단한 비가 온통 적시는 위력을 가늠해본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비가 오면 무작정 거리를 걸어 다니며 우산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적셔지는 몸 의 촉감을 기분 좋게 받아 들인다 했었다. 달구어진 아스팔트를 적시며 내 뿜는 냄새가
좋다하기도 했고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며 튀어 오른 물방울이 주는 소리의 촉감 이 좋아 길위에
할일 없이 쪼그리고 앉아 바라본다 고도 했었다
고교시절 종로 5가에서 미아리 가는 버스를 타야 집에 갈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신당동에서
종로 5가 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비가 오는 날 이면 비닐우산으로 비를 가리고 무겁고
투실한 책가방 을 들고 것는게 부담 이였었다.. 운동화의 윘 부분이 접히고 또 접혀 안쪽에 고무를
대어놓은 부분이 잘려지면 방울이 차고 올라와 발은 온통 젖었다.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 서울로 유학을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자랑이였던 시절이였다. 용돈조차 챙길 수 없이
달랑 왕복 차비만 으로 준비된 동전 몇 개를 주머니에 넣고 학교에 다니며 어쩌다 그 동전 마져 잃어버리면
하염없이 멀고먼 미아리 종점까지의 고행 같은 길을 걸어 집으로 갔다.
비를 맞으며 걸었던 일도 수를 세일 수 없이 많이 있었다.
이화동, 혜화동, 삼선교, 돈암동, 그리고 미아리 고개... 길음동... 아마 지금 이라면 그렇게 걸어서
학교를 다니라 했다면 포기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절의 기억 속엔 공부를 시키려 서울로 유학을
보낸 부모님 이 비 에 젖으며 농삿일 을 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 운명처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선교 를 넘어갈 때 토굴 같은데서 막걸리를 파는 술집이 있었다. 아직 저녁을 먹기 전이라
그 술집에서 내뿜는 빈대떡 지지는 냄새는 배고픈 나를 몹시 유혹 했었다.
대학에 들어가 삼선교 그 토굴 술집에 간 일이 있었다. 벽에 낙서투성이 인 그 술집 에서 친구들과
히히덕거리며 막걸리 를 마시고 젊은 청춘의 한 소절을 불태우기도 했다. 목로주점 이란 노래가
유행을 했고 맥주나 소주보다는 막걸리 가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빗줄기를 바라보는 아내의 불만처럼 시절을 잊은 듯 한 내 기억 속에 아련함 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
때도 늦장마가 있었다. 추석이 다가와 다 익은 벼를 수확 하려 할 때 지독한 비가 내려 온통 벼가 쓸어 지고
물이 차 들어와 몇 일 씩 빠지려 하지 않으면 벼에 싻이 돋아 그해의 농사는 망치게 되고 삶조차 피폐해 졌다.
바라보는 빗줄기가 가슴에 감추어둔 추억을 끄집어내면 삶은 그래도 평화로운 것이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 속 에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가득했다. 풍요로움 속에 낭만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지치도록 생존을 위한 거록한 명제를 앞에 두고 앞으로 걷고 또 걸어야 했다
구름이 가려진 하늘이 파랗게 모습을 보임으로 답답했던 마음이 생기를 되찾고 새로움으로 인한
희망 이라는 불꽃 을 지펴 올려야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빗줄기 가 주는 사색과 의미를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 받아 드렸던 시간이 민망해진다.
신발장 속에 우산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한 때 기념품이나 선물용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은 우산을 받았다.
학교 다닐 때 비닐우산의 추억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크기도 그렇 거니 와 용도 역시
여러 가지의 준비된 것 들이라 보턴 하나만으로도 펴지고 접혀지는 것들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대나무 살로 얽기 설기 조잡하게 만들어 놓은 비닐우산 은 너무나 잘 망가지고 그것이라도 쓰고 비를
피하려 함이 여의치 않을 때는 무참히도 내리는 비를 그냥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야 했다.
집에 도착하면 어쩌다 올라오신 어머니는 젖은 교복을 밤새 연탄불 아궁이 앞에서 말려주었다.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비 오는 날이면 간간히 기억의 창문을 뚫고 들려온다. 콩나물시루 같은
출근길 버스 에서 짐짝처럼 이리 저리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이 지낸 시절의 아련함이
조금은 더 질기게 이세상과 맞서게 했던 추억이다
방학이라 고향에 내려가면 빗줄기 속에 밭을 매고 돌아오는 어머니의 젖은 흙 빛 무명치마 가 가슴에 드리워 있다.
소쿠리 엔 감자 몇 알이 들어있고 어쩌다가 앞 논두렁 수멍에서 건져 올려진 생이(새우) 가 파닥거리고 있었다.
"왜 비를 맞고...."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매일매일 커가는 아들 에게 먹일 사랑이 그것으로 표현 되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도 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아내는 조금 불만 이였지만 입에 밴 호칭이 바뀌지 않아
지금도 생각이 나는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머니 가 아닌 엄마만 자리에 있다. 비가 소나기처럼
질서 없이 내린다. 몇 방울 의 빗줄기조차 몸에 젖을까? 우산을 들고 조심스레 걸으며 많이도 변한
현실 속에 늙은 나를 돌아본다. 시간이 무참히 흘러 어언 백발이 되었다. 그리운 사람들은 생각 속에
잠시 존재할 뿐 이제 점점 잊혀져 가는 그리운 시간도 안타깝게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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