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부 효자 와 숙종대왕
(상喪 가歌 승僧 무舞 노老 인人 곡哭)
조선의 성군 19대 임금님이셨던 숙종께서는
백성의 살림을 살피기 위하여 임금님들 중에서
미행을 가장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산 아래 마을에 홀아비와 아들, 며느리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두 남정네는 그래도 양반 출신으로 가난 속에서도 책을 가까이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그들을 아는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조석의 끼니조차 대기가 어려운 형편인데
돌아가신 어머니의 제삿날이 닥쳐왔다.
아들과 며느리는 궁리에 궁리를 해도 제사상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돌아가신 제삿날을 그냥 지나가 버린다는 것은 너무나 섭섭한 일이며,
아들과 며느리로서도 죄송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며느리는 생각 끝에 자기의 소담한 머리를 잘라
그것을 팔아서 제삿상을 차릴 생각을 했다.
그리고 머리 자른 돈으로 쌀과 반찬을 사서 정성껏 상을 마련하였다.
저녁이 되어 제삿상을 올리고 홀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해서
아들은 상주 복장을 하고 화로를 두드리며 노래와 장단을 맞추고,
며느리는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자 아버지는 기가 막히고 고마워 울고 있었다.
이때 숙종께서 민정을 살피고자 미행을 하시는데,
어느 집 앞을 지나려니 봉창문에 춤추는 그림자와 장단소리,
울음소리가 나서 수상히 여기고 문틈으로 살펴보니,
머리 깎은 여인이 춤을 추고 젊은 상주는 노래하며
늙은이는 슬프게 울고 있는 것이었다.
숙종은 사연이 궁금하여 승낙을 받고 들어가서
노인으로부터 그간의 사정 이야기를 들었다.
가난해서 먼저 간 처의 제삿날인데도 제삿상을 차릴 수 없게 되자
며느리가 머리를 잘라 상을 차리고 위로하기 위해서
아들과 장단을 치며 춤을 춘다는 것이었다.
숙종은 가족의 딱한 사정과 며느리의 효성이 지극함에 감복하여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가 없을까 하고 방안을 살펴보니
가난 중에도 서책이 가득하고 세 가족의 품행이 반듯하여
족보를 물으니 양반의 후손임을 알 수 있었다.
숙종은 수개월 후의 과거 일자를 알려주고
잊지 말고 과거 볼 것을 권유 하였다.
일행이 나간 후 이상한 서기<瑞氣>가
방안에 감돌고 있음을 세 가족은 느끼었다.
과거 날자가 되어 과장에 들어서니 특별히 이 날은 숙종이
어제<御題>를 내려 높이 앉아 계시었다
물론 이 선비는 상감의 용안을 볼 수는 없었다.
" 喪 歌 僧 舞 老 人 哭 " " 상 가 승 무 노 인 곡 "
젊은 선비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알 수 없는 문장이었다.
몽롱한 가운데 뜨거운 기운이 머릿속에 감돌며
어머니 제삿날의 회상이 주마등처럼 지니간다.
어머니 제삿날 오신 그 귀한 손님은
숙종대왕임에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선후 사정과 효에 관한 자신의 소신과
귀한 손님이 찾아 오셨던 이야기를 소상하고 겸손하게 적어 제출했다.
다음 이야기는 추론이 가능하니 생략하고 이 이야기를 음미 해 보자.
생활이 넉넉지 못하다는 핑계로 불효하는 사람들을 개도하기 위하여,
갸륵한 효부의뜻을 알리기 위한 선인들의 참 뜻이
오늘날까지 구전되고,
내가 중학교 3학년 시절에 선친으로부터 듣고 배운 고사이다.
물론 왕조실록에는 없는 이야기이다.
--- 모셔온 글 : 글쓰신 분 장봉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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