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장소멸의 법칙 / 법상스님
금강경에서 내가 금강경을 독송하는데도 불구하고
누가 나한테 욕하고 나를 괴롭힌단 말입니다.
그것은 내가 경전을 독송하고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는데
왜 이렇게 안좋은 일이 일어나는가 하고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사실은 전생에 지옥을 갈만한 큰 악업을 지은 사람이
금강경을 독송한다라는 이 기도 수행의 힘에 의해서
그나마 남들에게 욕 얻어 먹고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으로 그 업이 녹는 것이다.
또 아주 큰 업장이 이렇게 기도 수행을 통해서 녹는단 말이죠.
그래서 오히려 나쁜 일이 일어났다. 누가 나를 괴롭히고 나를 업신여기고
괴롭힘을 당했다,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괴로워 할 일이 없다는 거죠.
"아 내가 다음 생에 지옥행인데, 지옥 갈 일이 있는데 그 지옥 갈 일을
내가 이것으로써 상쇄했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업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삶의 즐거운 일은
그저 선업을 짓는 것을 받는 것일 뿐이고
괴로운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악업을 받는 것이고
내 안에 있던 악업이 소멸되는 것일 뿐이니까
삶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받아들이고
괴로운 일은 괴로운 일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래서 법구경에서도 그럽니다.
악행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자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악행의 열매가 익을 때에 그는 큰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니까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인데도 지금 잘 산단 말이에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 악업을 지금 받을 때가 안되어서 그럴 수 있단 말이죠.
그리고 또 선행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선한 자도 고통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선행의 열매가 익을 때 그는 큰 행복을 누린다고 했단 말입니다.
우리가 착하게 선하게 지냈지만 그 과보를 안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착한 사람이 요즘에 손해보는 세상이야라고 얘기한단 말이죠.
"착하게 살면 오히려 손해봐" 이렇게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주법계의 이치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하는 얘기입니다.
우리 눈에 껍데기로 봤을 때 처럼 그럴 뿐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응과응보에서는 어떤 것도 버릴 수가 없다.
내가 지은 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받아야지만 그것이 소멸하는 것이지
받지 않고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에도 바다에도 산중 동굴에도 사람이 악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대도 없다라고 법구경에서 얘기를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교에서는 그 업장소멸이라는 말을 쓴단 말입니다.
수행을 하고 복을 짓고 하면 업장이 소멸된다 이런단 말이죠.
그래서 제가 소금물에 비유로써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악업을 지었다라는 것을
아주 짠 소금물이라고 봤을 때,
악업을 한 컵만큼 지은 사람은 한 컵의 소금물을 우리가 먹어야 된단 말입니다.
그 진한 소금물 한 컵을 다 먹으려니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소금물을 먹음으로써 악업을 받아야 하는데, 이 한 컵의 소금물을,
악업을 지은 것을 반드시 먹어야지만 소금물이 없어진다.
먹긴 먹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먹기는 먹어야지 없어지는 것이 이치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컵에다가 반드시 안 먹어도 된다는 말이죠.
그 소금물 만큼의 양의 그릇을 키우게 됐을 때, 큰 냄비에다가 먹을 수도 있고,
아주 어마어마한 크기의 냄비에다가 그 소금물에 갖은 양념까지 해서 먹게 됐을 때
고통스럽지 않고 오히려 즐겁게 먹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같은 업을 지었으면 업을 받기는 반드시 받지만 기계적으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 이후에 순간순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얼만큼 선을 행하고 살고
얼만큼 수행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복과 지혜를 증장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과거에 지은 업을 고스란히 기계적으로,
악업을 지었다고 해서 악업을 고스란히 받지 않아도 된다는 소립니다.
전혀 다르게 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은 정확히 업장소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업장소멸과 동등한 효과를 보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업장소멸이라고 이름을 하고 표현을 쓴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처럼 똑같이 업은 받아야 하지만 다르게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를 놓아버리라고 하는 겁니다.
과거의 죄업에 얽매서, 죄지은 업장에 얽매서
지금 이 순간을 죄의식 속에서 살고
괴로움 속에서 살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을 놓아버리고 매 순간순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그 순간의 의식에 따라서 내 과거의 업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 -
'향기로운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이란 내 마음의 외적 그림자 / 법상스님 (0) | 2025.09.18 |
---|---|
내 업을 전면적으로 궤도 수정하려면? / 법상스님 (0) | 2025.09.17 |
거래하는 기도와 참된 기도 / 법상스님 (0) | 2025.09.15 |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와의 마주침 / 법상스님 (0) | 2025.09.13 |
일이 곧 마음을 비우는 수행 / 법상스님 (0) | 2025.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