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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단상 / 김수용

덕 산 2025. 9. 5. 18:25

 

 

 

 

초가을 단상 / 김수용

떠나야 할 시간도 망각하고
힘겨운 비바람 빌어오니
슬그머니 뒷걸음치는
안쓰러운 여름

그렇게 비바람이 스쳐
지나간 뒤
사랑하는 여인네의 은은한
분향기처럼
가을은 소리 없이 다가왔다

노랗게 익어가는 이삭 속에
움츠렸던 메뚜기는
목청 터질 듯이 가을을
노래하는데

때늦은 매미의 울음소리는
타들어간 실고추처럼
메마른 가지 위에 누워있다

지난 여름날의 남겨진 상처는
가슴에 묻어버리고
잔가지에 걸쳐있는 미련은
가을바람에 실려 보내리

시련을 견디고
고독 속에 찾아온 가을,
아쉬운 마음 한가득
초가지붕 위 둥근달 옆에
얹어 놓으니

넝쿨 속에 잠자던 호박은
새벽이슬 내리도록
서러운 눈물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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