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단상, 마음에 뜬 달 / 정해란
유년의 추석 풍경 따라가면
마음에 뜬 달, 송편
몇 개월인가를 알알이 햇볕 채운 햅쌀
물에 담긴 채 하룻밤 풍성한 달빛도 채워
유년의 마음처럼 부풀던 햅쌀
소쿠리에서 새벽 여명까지 담으면
까치발로 기다리던 오누이들에게
선물처럼 조각보에 덮여오던 그 하얀 떡가루
떡가루 한입
입가에 듬뿍 묻힌 채 웃음 가득해지는 풍경
빛바랜 채 세월 속으로 멀어졌다가도
금세 색깔이 선명하게 번져가는
추억의 수채화 한 폭
송편 반죽이 오면
어느샌가 반달 송편이 가지런히 줄 서고
엄마의 시범을 흉내 내는
우리의 소꿉놀이도
삐뚤빼뚤 줄 서던 추석 전날
동그랗게 만들어 그 안에 소를 넣고
반쪽이 또 다른 반쪽을 만나
빈틈없이 봉합된 채
둥근 달보다 더 정겨운
반달로 뜨던 추석 전날
햇빛, 달빛과 함께 흐른 세월
맑은 바람 소리까지 뜯어온 솔잎 깔아
솥 바닥에서부터 은은히 올라온
맑디맑은 솔잎 향이
온갖 나쁜 기운 먼저 잡아
햇송편으로 익어가던 통과의례
지상에 뜬 수천, 수만의 반달이
천상에 뜬 보름달로 차오르길 소망하면서
함께 빚고 함께 나눈 송편
베어 물기 전 기대와 소망이
깨나 콩고물로 터져 나올 때
비로소 빛과 맛과 향이 하나 되어
해마다 온몸으로 흘러들었을 떡, 송편
하늘과 물과 마음에 뜬 잊지 못할 그 달
반응형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석 무렵 / 맹문재 (0) | 2024.09.14 |
---|---|
달빛 기도 - 한가위에 / 이해인 (2) | 2024.09.13 |
폭염의 입관 / 김분홍 (2) | 2024.09.11 |
추석 무렵 / 박남준 (1) | 2024.09.10 |
가을 풍경 / 법정스님 (1) | 2024.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