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입관 / 김분홍
폭염에게 산소 호흡기를 씌워줄까
산소 호흡기를 쓰고 숨이 멎은 나처럼, 여긴 춥고 날카롭다.
어디선가 살쾡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천국과 이승의 경계에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 사람에서
사람을 빼면 남는 건 육신인가 혼령인가.
알약을 먹고 뒤척이는 열대야의 밤. 알약을 삼킬 때마다
언젠가 알약이 나를 삼킬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염습사가 폭염의 머리를 빗긴다.
뜨거웠던 생을 세척하고 있는 손끝이,
기저귀에 짓무른 엉덩이를 삼베에 싸서 포장한다.
떠난 흔적만 있고 돌아온 흔적이 없는 담쟁이의 외출은 편도다.
누구나 가야 하지만, 아무도 가고 싶지 않은 마지막 여정.
울지 말아요. 나는 그림자를 지운 망자.
사망진단서 한 통에 폭염의 죽음은 요약되고 국화꽃을 맞이하는 조문객.
매듭 풀린 폭염이 영정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붉은 혀를 내밀고 노을로 산화해버린 맨드라미의 최후인양,
몇 달 동안, 물 한 모금 없이, 견딘 폭염의 유언은 무엇일까?
나는 폭염을 만질 수 있고, 폭염은 나를 만질 수 없고,
죽음은 단추를 채울 수 없어 매듭으로 묶여 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관 밖의 나는 관 속의 나를 기웃거린다.
묶여 있던 죽음이 죽음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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