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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 김 참

덕 산 2024. 8. 15. 08:48

 

 

 

 

 

폭염 / 김 참

 

늦잠에서 일어나 거실 커튼을 걷는다.

창밖엔 우주선이 떠 있다.

우주선에서 외계인들이 뛰어내린다.

새처럼 날아 베란다로 들어온다.

그중 한 명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한다.

우린 구면이죠? 그렇군요.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확실히 안면이 있는 이다.

같이 온 두 외계인은 낯을 가리는지 베란다에서

붉은 꽃 피운 외계 식물들을 구경하고 있다.

구면인 외계인이 초면의 외계인들을 소개한다.

 

우리는 서로 적당히 인사를 나눈다.

나는 찬장에서 붉은 대접 네 개를 꺼내 테이블에 올린다.

손님이 왔으니 대접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게 없어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붉은 대접에 골고루 따른다.

이건 우리 고장 특산주인데 맛을 한번 보시죠.

순식간에 잔을 비운 외계인들이 눈을 커다랗게 뜬다.

이런 기막힌 술은 처음이라며 감탄한다.

하기야, 내가 마셔본 막걸리 중에 세 손가락에 들어가는 상동 막걸리니까.

그럴 만도 하겠지.

구면인 사내가 막걸리를 좀 얻어가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아쉽지만 집엔 남은 게 없다고 했더니 꼭 좀 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한다.

 

막걸리를 구하려면 집 근처 두배로마트에 가야 하는데,

밖에 나가기 싫어 적당히 둘러댄다.

아쉽지만 어렵게 구한 술이고, 생산량이 많지 않다고.

오늘만 날이 아니니 다음을 기약하자고.

미리 연락을 주고 오면 술을 구해놓겠다고.

외계인들은 아쉬워하며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뜻을 전한다.

우리는 손을 내밀고 작별 인사를 한다.

외계인들이 새처럼 날아 우주선으로 돌아간 뒤 나는 커튼을 친다.

빈 대접을 치우고 냉장고에서 막걸리 한 통을 꺼내 뚜껑을 딴다.

연일 폭염이 계속된다.

막걸리 사러 나가기엔 너무나 더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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