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 황인숙
빗방울보다 단단한 것들이
빗방울을 가볍게
맞받아치는 소리 들린다
또 하염없이 맞받아치는
냉장고 위 천장 구석
둘둘 말린 거미줄, 이라기보다 거미줄의 허물
열린 창으로 바람이 들이칠 때마다
풀썩, 풀썩, 몸을 뒤챈다
이 방에서 거미를 본 바 없는데
저렇듯 거미의 자취가 종종 보인다
비 오는 날은 거미들이
공치는 날일 것이다
파리, 나방이, 잠자리, 하루살이
그 많은 날벌레도 그럴 것이듯
하필이면 급경사길이 많은 동네에서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를 종종 본다
비 오는 날 그분을 만나면
세상이 폐지처럼
거미줄처럼 눅눅해진다
할머니시여, 빗방울보다 단단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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