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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가 1. 2 / 이해인

덕 산 2024. 2. 6. 15:02

 

 

 

 

 

겨울 아가 1. 2 / 이해인

눈보라 속에서 기침하는
벙어리 겨울나무처럼
그대를 사랑하리라

밖으로는 눈꽃을
안으로는 뜨거운 지혜의 꽃 피우며
기다림의 긴 추위를 이겨 내리라

비록 어느 날
눈사태에 쓰러져
하얀 피 흘리는
무명(無名)의 순교자가 될지라도
후회 없는 사랑의 아픔
연약한 나의 두 팔로
힘껏 받아 안으리라

모든 잎새의 무게를 내려 놓고
하얀 뼈 마디 마디 봄을 키우는
겨울나무여

나도 언젠가는
끝없는 그리움의 무게를
땅 위에 내려 놓고 떠나리라

노래하며 노래하며
순백(純白)의 눈사람으로
그대가 나를 기다리는
순백의 나라로

 

 

2.

하얀 배추속같이
깨끗한 내음의 12월에
우리는 월동 준비를 해요

단 한 마디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헛말을 많이 했던
우리의 지난날을 잊어버려요

때로는 마늘이 되고
때로는 파가 되고
때로는 생강이 되는
사랑의 양념

부서지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다시 기억해요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속에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한겨울 추위 속에
제 맛이 드는 김치처럼
우리의 사랑도 제 맛이 들게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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