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칠월의 마지막 밤에 / 이양우

덕 산 2022. 7. 29. 12:54

 

 

 

 

 

칠월의 마지막 밤에

                        - 이 양 우 -

 

 

사랑아, 칠월은 간다.

내 혀끝에서

겨드랑이에서

허벅지에서

내 허파에서

뇌리에서

기탄없이 만났던 정들아,

땀디가 꽃을 피우던 계절아,

이처럼 뜨겁던 청춘은 간다.

 

더 뜨겁다가 더 곤드레지다가

곰삭은 과일주 향내로 가라앉은 항아리를

뚜껑 열어 용수박고 떠 마실 가을을 향해

팔월에 오는 푸른 거리, 국화꽃 다정한 하늘을 열으리,

 

가자, 사랑아, 여름도 탄다.

불볕가에 앉아서 모래성도 쌓아라.

네 몸은 지친 불덩어리

까만 재로 남은 칠월을 두고 오라.

 

정열 치솟을 밤도 희열에 멍이 들고

나는 노천 허리에 누워 별을 헤인다만

불현듯 반딧불이로 날고 싶구나

평화로운 별들은 밤길이 더 좋아라.

 

이슬 젖는 나그네 우수의 초원이랴!

우리는 사랑으로 가슴을 잇대어도

별들은 영롱한 밀어로 긴긴 밤을 지새운다.

 

 

 

 

 

 

가자, 칠월아, 마지막 밤아,

네 보내온 편지, 나이야가라 폭포 사진 한 장도

빗돌처럼 만년을 되새겨 추억하리니

세찬 물소리 낙차 하는 그리움아,

그만큼 멍들대로 멍들지 않았는가,

모른체 침묵하고 돌아가는 슬픔은

이제 나의 뇌파, 원추를 휘감아 흔드노라.

 

가을의 품으로 더더욱 안기고 싶다.

머지않았으리, 내 검게 태운 표피도 박제해야지,

낭만파의 거울 속으로 향일하는 시간의 침은

세월을 가시 돋은 허무의 언덕으로 밀어 제친다.

 

쓸쓸하구나, 이토록 노티한 꿈결들의 마찰음이,

너무 더티하구나, 이래서 잠을 못 이루는가,

저 거칠은 칠월의 마지막으로

더 와일드한 팔월의 복사열도 높은 습도로 분열하는가

 

파동쳐 거친 숨을 네게로 보내면

한 고비 타 오르다가 지친 거울 안으로

황금 단풍길 풍경소리 울리지 않겠느냐,

익은 자의 망서림, 가을로 가는 마차가

주인 없는 역두에 기다릴지라

높푸른 하늘을 열고 흥미진진한 전설 속에서

아련한 추억의 둥지를 틀 것이라.

 

여름아, 칠월아, 팔월의 열애들아,

내 가슴은 죽고 싶도록 아픈 시심을 잉태하는도다.

나는 여기서 온갖 흉금을 털어놓고

만가지 근심도 헐어내어

깊은 삶을 은하에 띄우리,

고독과 허무와 나태까지도 다 분해하여

비운자의 가벼운 인생 나룻터에 서게 하리,

 

 

 

 

 

반응형

'좋은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8월이 아름다운 이유 / 윤보영  (0) 2022.08.01
8월의 기도 / 임영준  (0) 2022.07.31
산처럼 / 유치환​  (0) 2022.07.28
7월의 들녘을 거닐면 / 이재현  (0) 2022.07.27
칠월의 외침 / 정심 김덕성  (0) 2022.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