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추억의 점심도시락..

덕 산 2018. 6. 21. 10:13

 

 

 

 

 

 

 

 

김홍우(khw***) 2018-06-20 19:19:15

 

점심은 그냥 빵이나 삼각 김밥으로 때워요..”

 

, 때우다니!! 끼니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 입안에서 꿈틀꿈틀 하는 것을 보니

저도 바야흐로 꼰대의 시절을 지내고 있는가 봅니다. 허허. TV에 비춰진 어떤 청년의 직장 점심 모양을 보면서

때우는것으로서는 전혀 아니었던 저의 소싯적 점심.. 점심도시락.. 추억들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1960년대 중반 즈음 이제는 이름마저도 낯설어진 국민학생 시절에 학교에서는 집안이 가난한 아이들..

물론 거의 대부분이 가난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더욱 가난하여 학교에 와서도 점심을 굶는 아이들에게

급식 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무래도 전후 복구와 생활 지원의 구호품모양으로 되었던 것이 분명한데..

서양 그것도 주로 미국 쪽에서의 지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가장 오랜 기억 그러니까 1~2학 년 쯤에

빵이 2개 쯤 들어있는 하얀 봉지입니다. 제가 잘 아는 형 친구도 그것을 받아들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 빵 봉지만 바라보았던 기억입니다.

이제는 추억이 되었지만..

 

저만 하여도 당시의 가정 형편이 가난 하기는 했지만 아주 나쁘지는 않아서 그때까지만 하여도 책보자기

사용하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저는 거의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고 보편화 하였던 가죽가방을 둘러메고

다녔으며 좀 더 고학년이 되었을 때도 점심도시락을 꼭꼭 들고 다녔기 때문에 그 급식 빵을 받아먹어 볼 일은

없었지만 그때만 하여도 구멍가게에서도 커다란 유리병에 큼직한 눈깔사탕을 넣어놓고 팔았으며 과자 역시

여닫이 진열장에 넣어 놓고 꺼내어 주었으며 몇몇 빵 종류들도 뚜껑 없는 나무궤짝에 가지런히 담아 놓고

팔았던 때였기에 뭔가 맛있고 달콤한 것이 무척이나 먹고 싶었던 때였지요.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개별 포장이 거의 없어서 신앙촌 카스텔라크라운 산도정도가 개별 포장으로 되어 있었고..

그리고 그 무렵 즈음에 삼립 크림빵’.. 그리고 해태 제품이든가.. ‘인삼 캬라멜’ ‘풍선껌등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도 건빵 같은 것은 개별 포장되어 있기도 했고 또 롯데 껌 종류가 그러하였던 것으로 기억은 납니다만 쯧,

삼각형 투명 비닐용기에 통통하게 담겨진 물총주스가 날개돋인 듯이 팔렸던 시절이었던지라..

허허. 벌써 50년도 넘은 전의 이야기이지요.

 

 

 

 

 

 

 

그때는 일본식 발음으로 벤또라고 하였던 네모난 양은도시락들을 대부분 사용하였는데 그 속에 밥도 넣고

반찬도 넣었는데 반찬 넣는 용기는 한편에 따로 있었습니다. 거의 모두가 밥은 보리를 많이 섞은 정부미 쌀밥이었고

반찬은 김치 일색이었습니다만 개중에는 역시 일본식으로 뎀뿌라 또는 오뎅이라고 불렀던 납작한 어묵을 썰어서

간장에 졸인 모양으로 가져오는 아이들도 꽤 있었지요. 그리고는 콩자반, 고추장, 콩나물 등이었는데

어떤 아이들은 밥 위에 달걀프라이를 얹어서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도시락이 세워진 채로 학교까지 오게 되는 과정 때문이었겠지요.. 김칫국물들이 흐르곤 하여서 책도 공책도

빨간 물이 들면서 냄새가 진동을 하기 일쑤였던지라, 곧 이어 등장한 것이 도시락 반찬용 병입니다. 아이들 주먹

두 개 정도의 아담한 모양을 한 병들이 주로였는데 도시락 반찬용기용으로 생산 된 것이라기보다는 주로 뭔가를

담았던 외제 유리병들의 재활용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조금 더 큰 외제 커피 병들이 인기가 있었는데

어떤 친구는 거기에 물김치 까지도 넉넉히 담아 와서 친구들과 맛있게 나누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겨울이면 그 도시락들을 교실 중앙에 있는 난로 위에 올려놓곤 하였었지요. 56층으로 쌓여지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3층 정도가 가장 인기를 끌었는데 왜냐하면 밥이 타거나 눌거나 하지 않고 가장 먹기 좋은 따듯함을

유지시켜주었기 때문입니다. 허허. 너나없이 가난했기에 다 같이 배고프고 허기 졌던 때문이었을까요..

오전 수업 한 시간을 마치면 벌써 도시락을 꺼내어 먹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힘세고 짓궂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을 몰래 꺼내 먹기도 했고.. 그래서 우는 아이.. 교무실로 달려가는 아이.. 결국 선생님이 개입하여

잘 잘못의 판정을 내려주던 사태.. 복도에 무릎 꿇고 두 손을 들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들... 벌써 반세기 이상이

지나갔지만 왜 이다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나면서 눈앞에 떠올려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 그래도 뭔가는.. 그때가 지금보다 더 좋았던 것일까요...

 

 

 

 

 

 

하얀 쌀밥을 싸오는 아이도 있었지만 선생님은 혼식도시락을 싸오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어떤 때는 점심시간에

모두가 도시락 뚜껑을 다 열어 놓고 검사를 받기도 했지요. 선생님을 아이들 사이를 다니면서 휘 둘러보시고는

혼식을 하여야 건강하여진다고 말씀을 하시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가시면 어떤 아이는 다 들릴만한

소리로 근데요. 선생님 보리밥을 먹으면 방귀가 자꾸 나와서요!!”하여서 키키킥 크크쿡 아이들을 웃게 하곤 하였습니다.

그 역시 이제는 그립고 다시 한 번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장면들이 되었습니다.

 

비슷한 이름이어서 별명이 계백장군이었던 3학년(..?) 적 친구가 생각납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에 도시락

뚜껑을 가지고 책상들 사이를 다니면서 아이들이 먹고 남은 반찬 특히 고추장 같은 것들을 모아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꿀꺽 꿀꺽 먹곤 하였는데 그때는 와 저렇게 매운 것을!!’하면서 감탄들을 하였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역시 배고픈 시절이 만들어낸 안쓰러운 장면이었던 것이지요. 쯧 그 친구 계백장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우르르르 딸그락딸그락

그날 모든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달려 나갈 때 운동장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바로 책가방 속 빈 양은도시락 속에서

숟가락 젓가락이 뛰면서 내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소리가 나려면 그 가방을 짊어진 아이들 역시 뛰어야 했으므로

지금 생각해 보면 건강한 소리들 이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교문 밖으로 나가면서

뭐가 그렇게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았던 것인지 만화방으로 뛰었던 것인지 아무튼 사방으로 뛰곤 하는 아이들이 많았지요.

그래요.. 건강한 모습 건강한 소리들이었고 지금도 귓전에 들려오곤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점심으로 때운다는 말들을 자주 합니다. 물론 대신 한다또는 대충 먹고 치운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저와 같은 베이비 붐 시대의 선두주자들은 휴.. 긴 한숨을 내어쉬게 되곤 합니다. 그때 그 시절 속의 소중한 한 끼니..

학교에서 나누어주던 빵.. 좀 더 뒤에 옥수수 빵.. 들의 모양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저 같은 사람은 시대변화에 좀 더 가깝게

발맞추지 못하고 아직도 쯧쯧 하고 있으니 그래서 꼰대이겠지요.. 아이들아, 절대로 끼니 굶는 일이 생기지 말고

다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들 살기를 바란다..

 

산골어부 2018620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