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천복(yor***) 2018-03-19 12:30:01
주인(主人)은 물건의 임자라는 말이다.
그리고 의식(意識)은 어떤 일이나 현상,
대상에 대해 깨이었는 정신으로 깨닫고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주인의식’ 이란 자기것에 대해 분명한 인식이 있고 그것을 지키고
관리하고 소유권을 행사하는 깨어있는 정신이라는 뜻이다.
정치적으로는 ‘국가관’ 이 그런 것이다.
노예는 종(從)인데 남의 집에서 대대로 천역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인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상품이나 가축과같이 취급되어 타인에 사역하는,
자유없는 신분의 개인,또는 집단이다.
조선시대에는 남,여 종을 ‘노비’ 라고 불렀다.
노예에게는 노예근성이 있는데,
무엇이든지 남의 지시가 있어야만 행동하고 자주적으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려는 성질이 그것이다.
근성(根性)은 마음속에 깊이 박혀있는 좋지않은 성질이다.
따라서 주인의식과 노예근성은 그 근본에서 차원을
달리하는 두가지 인간정신 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과 노예는 그 근본정신이 다른것처럼 일상을 사는 방법도 아주 다르다.
지금은 물리적으로 노예가 존재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러나 겉으로 똑같아보이는 사람들을 정신, 정서적 행태로 구분해 보면 그 행동
거지에서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과 노예근성이 있는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매일의 일상생활 속에서 겪는 일이기
때문에 반론의 여지가 없는 현실적 문제이기도 하다.
주인의식과 노예근성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생활 등
우리일상 전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정신적 차이’ 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차이의 파장은 우리 사회 속에서 우리공동체를 이롭게도 하고
해로움을 끼치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쪽이 더 많은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사안에 따라 달라질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학자들이 풀어여할 숙제이기도 하다.
주인의식을 가지고있는 사람들의 가장 큰 인간적, 인격적 특징은 ‘책임감’ 이다.
자기것에 대한 올바른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려는 책임감이 강하다.
똑같이 자기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도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한다.
반대로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큰 특징은 이 책임감이 없는점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소유권개념이 없기 때문에 책임감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현대사회에서 물리적인 노예는 아니지만 그 정신,
인격적 세계에서는 노비에 불과한 존재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많은사회와 책임감이 없는사람이
많은 사회는 어느쪽이 더 건전한 공동체일까.
이 질문은 바로 오늘 우리사회공동체가 묻고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또 그만큼 절박하고 절실한 질문이기도 하다.
주인의식이 있는사람은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거짓말로 남을 속이지 않는다.
자기에게 불리한 경우라해도 속이지않는다.
그러나 노예는 자기가 불리해지면 그 위기를 모면하려고 거짓으로 남을 속인다.
자기가 거짓으로 취하는 이익이 다른사람의 것을 손해나게 하는
행동이지만 그것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은 ‘자기것’이 있기 때문에 남의것을 훔치지 않는다.
그러나 노예근성은 ‘자기것’이 없기 때문에 필요에따라 남의것을 훔친다.
이때 남의것을 훔치면서도 그게 잘못인줄 모르거나 인정하려 하지않는다.
특히 정치판에 몸담고있는 ‘정치모리배’들이 이런 성향이 강하며 무엇보다도
좌익들은 선전,선동으로 남의 양심과 정신까지 훔친다.
그들은 그것을 ‘혁명’을 위한 정당한 수단이라고 우긴다.
1917년 볼세비키혁명이후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기까지
2억명의 인간이 그렇게 희생됐다.
그래서 마르크시즘은 현대의 재앙인 것이다.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은 그게 필요한 일 이라고 판단되면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그일을 한다. 그러나 노예근성은 누가 시키고 보지않으면 해야할일도 안한다.
자기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일의 결실에 대해서도 지분과 소유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을 시키고 감시하면 강제로 하게된다.
노예근성은,
게으르고, 법과 규칙을 안 지키며
혐동심이 없어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처삼촌묘에 벌초하듯 한다는 말이있다.
언손질 이라고도 한다.
그게 무슨일이든 건성으로 하고 성실하지 못하고 효율적이지 않다.
따라서 생산성이 낮아지고 그건 그대로 가난으로 연결된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결코 남을 탓할 수 없는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리적 노예는 없는 시대지만, 정신적으로 주인과 노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게
인간 세상이고 여기에는 동서고금, 남 녀 노소도 없다.
그 뿌리가 서로 다른 인간성에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자. 나는 ‘주인’ 으로 사는가, ‘노예’로 사는가.
이 물음과 대답은 보통 때도 중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국가적
혼란의 시기에는 더 절실한 질문과 대답이 된다.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은 그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주권재민의 나라이기에 더
그렇다. 지난대선에서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정권의 작금의 행태를 보면 대답은 자명해진다.
자유민주국가를 사회주의공산국가로 뒤 엎으려는 망발이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주인의식이 크게 부족한, 노예근성에 더 가까운
우중(愚衆어리석은 군중)들이 이런 권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노예에게는 날카로운 판단력이 없고, 정신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이 이 지경이 됐으니 향후의 거취가 더 중요해진다.
지금의 ‘위기의 시국’ 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맞설 것인지,
아니면 노예근성으로 뒤로 물러설 것인지가 그것이다.
주인은 나라가 자기것이기 때문에 결코 물러서지않고 싸우겠지만,
노예는 이러나 저러나 노예이니 나설 명분에 약하다.
자칫, 노예근성은 대물림 될수도있다.
이제 남은문제는 주인과 노예의 비율이다.
어느쪽이 더 많을까.
주인이 많으면 일은 바로잡히는 것이고 노예가 많으면 일은 그르치는 것이다.
우리사회 저변에 크게 깔려있는 천박한 노비문화가 그래서 염려된다.
나랏일에는 관심도 없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동안 손톱 밑은 곪고 있다.
결국은 손이 썩어 찍어낸 다음에 가슴을 치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걸 막을 줄 아는 게 바로 주인의식이다.
싸우다 지면 다시 일어설 수 있지만
스스로 무릎을 굽히는 나라는 일어서지 못한다.
- 윈스턴 처칠. -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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