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하는 일들..
김홍우(khw***) 2018-01-11 11:51:39
“자기가 당해 봐야 알지...”
반세기 전 어르신 들이 가끔씩 내뱉듯이 또는 탄식에 섞어 하시던 말씀으로 많이 들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고’ 입을 것과 덮을 것이 없어서 ‘얼어 죽었다더라’는 마음 스산한 말들이
여전 하던 때가 불과 반세기 전이었습니다. 그러한 가난의 기반 위에서 쯧, 저마다 굶어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의 모양들이었겠지요.. 억울하거나 피 눈물 나는 장면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국민학생으로 어렸던 저는 “당해 봐야..” 하는 어른들의 내뱉음을 들으면서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뜻이나 사정이나 의미를 잘 몰랐지만 이제 환갑을 지난 나이가 되어 그때 그 어른들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말이 무엇인지 왜 그런 말을 하게 되는지 그 마음이 어떠하였겠는 지를 사회 환경이 다르고 사는
조건이 달라졌기는 하였지만 ‘사람의 사는 모습’은 언제라도 여전한 것이기에 아련한 마음으로
지난날을 더듬어 보며 머리를 끄덕이게 됩니다.
‘당하다’라고 하는 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에게 불리하고 어렵고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모습을
주로 이야기 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갑작스런 사고.. 예기치 못한 통보.. 등으로입니다.
그래서 놀라고 슬퍼하고 분해하고 당황하여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하거나 낙담하여 어찌 할 바를 몰라
망연자실하게 되지요. 당하여 망하고, 당하여 눈물 흘리고, 당하여 불구가 되고, 당하여 가족을 잃고,
당하여 자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험한 일 억울한 일 감당 못 할 일들의 엄습을 이겨내지 못했고
또 이겨 낼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하는 사람들은 주로 약자(弱者)의 모습들이지만 강자(强者)라고 예외는 또한 아니지요. 예부터 있어 왔던
말이기는 하지만 요즈음 들어 더욱 ‘갑(甲)’이니 ‘을(乙)’이니 하는 말을 많이 듣게 됩니다. 뭉뚱그려 고용의
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갑’ 그에 이해 고용되어지는 사람을 ‘을’이라는 구별을 두는데 그렇게 갑권(甲權)을
가진 이의 안하무인 행패의 모양을 ‘갑질’이라고 하는데 굳이 한문으로 옮기자면 갑질(甲抶)이라고 할 것 같네요.
그러나 당하는 이들의 모양에 대하여서는 ‘을질(乙抶)’이라고 하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당하는 것’은 자기의지로
하거나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굳이 말을 만들어 본다면 ‘을굴(乙屈)’이라고나 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갑질(甲抶)이라고 하든 을굴(乙屈)이라고 부르든 말의 표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멸 행위의 근절과
수욕의 단절이 필요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여전한 모양처럼 그러한 것들이 근절과
단절이 되지 않는 이유는 첫째는 ‘욕심’이고 둘째는 ‘교만’이라는 괴물들이 심중에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괴롭든지 아니든지 어떻게든 더욱 부리고 쥐어짜서 한 푼의 이익이라도 더 취하겠다는
마음에서 과도한 채근과 종용과 요구가 나오게 되기 때문이며 ‘나는 부리는 사람’ ‘너는 복종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공식의 확인과 마음의 구분이 갑과 을의 관계를 즉시로 주종(主從)관계의 모양으로
만들어내면서 행패로 치닫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높다, 내가 주인이다, 내가 고용주다, 내가 칼 든 사람이다.. 라는 생각의 팽배가 사람을 업신여기고
차별을 두고 괴롭히면서 지워지지 아니할 깊은 상처를 만들어 주게 됩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는
늘 있어 왔던 것이고 앞으로도 있어야 하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아무런 잘 못된 것이 없는 제도이고
전래관습의 사회구조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정당하지 않은 일로 ‘괴롭히는 자’와 ‘괴롭힘을 당하는
자’의 구분이 생겨나는 것으로서 보편적 사회 인식 속의 ‘갑과 을’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편이
날로 더욱 심화되어 가는 것으로 사회의 평등 균형과 화합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모양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라면 결국 이르게 되는 종착점에는 ‘불화와 다툼’ 밖에는 달리 남아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정말 지금은 갑을(甲乙) 피차 상호간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과 이를 일깨워주고 돋우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당해봐야..”라는 말들이 사려 물은 입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아프지 않아보았으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알 수가 없듯이 업신여김을 받아보지
않았으면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의 심정을 십분 헤아려 볼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신의 맡은 바 업무에 대한 능력부족 등으로 지적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없지 않아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업신여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업신여긴다고 하는 것은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얕보는 것과 깔보는 것이지요. 몸이 약하거나 공부를 못했거나 가난하거나
육체노동을 하거나 하는 모양들 속에는 ‘거짓’이 없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어느 시대에나 사람이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정직’이라고 하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로 그 정직은 ‘거짓이 없는 모양’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일단 거짓이 없는 사람은 존경 받아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모든 악행과 사회의 다툼과 싸움들은 모두 ‘거짓’에서 비롯되고 발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거짓이 없는데다가 능력까지 갖추어져 있으면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할 것이지만 그러나 일단 거짓이
없으면 금상(錦上)의 기틀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고 그 위에 첨화(添花)의 모양을 올리는 것은 고용주의
몫일 수도 고용인의 몫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의 합력’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합력’은 상호 좋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래서 서로의 힘을 모으는 합력(合力)입니다.
또 서로의 힘을 모으자면 뜻이 맞아야 하고 뜻이 맞는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 된다고 하는 것이기에
‘갑(甲)질과 을굴(乙屈)’의 관계 속에서는 결코 피어날 수 없는 환상의 꽃인 것이지요. 휴.. 여름철 바닷가에서
조용히 모여앉아 쉬고 있는 갈매기들만 보면 돌을 던지거나 냅다 뛰어가서 다 쫓아버리는 모습은 사람들의
숨겨지고 감추어졌던 본연의 드러남이라고 합니다. 손에 쥐어지는 아무런 소득도 이익도 없고 오히려 뛰어가는
수고를 하여야 하는 것이지만 ‘겁주고 놀라게 하며 괴롭히는 것으로 얻어지는 쾌감’을 위하여서
기꺼이 보여주는 사람의 본성이라고 학자들은 말을 합니다.
‘본성(本性)’이라고 하는 것은 ‘고칠 수 없는 바뀌지 않는’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릴 수는’는 있는 것이지요. 마치 사람이 옷을 입는 것으로 자신의 알몸을 가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제하고 절제하고 참고 인내하는 것으로 본성의 마구잡이식
유출에 주의하고 경계하며 공동체가 모두의 유익을 위하여 나아가는 진행에 힘을 더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할 때에 모두의 평안과 모두의 유익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갑(甲)질이라 함은 명백히 공공의
평안과 유익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상대에게 골 깊은 상처를 만들어 주는 것이며 광의로
볼 때에 커다란 사회균열의 조짐을 조장하는 행위입니다.
“악행(惡行)은 필히 재앙(災殃)을 부른다.”
는 선현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멸시와 업신여김으로 저질러지는 갑(甲)질은 결국 그의 앞길에 앙화가
가득한 삶의 전개를 기꺼이 만들어 주고 이루어줍니다. 굴욕(屈辱)과 수욕(受辱)의 복수심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우주공간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다가 “옳거니!!” 하는 때와 기회만 생기면 득달같이 내려오고 달려들면서
누군가의 파멸(破滅)보기를 기어코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또한 세월이 흘러 돌아보게 될 때에는
그 역시 헛되어 바람에 날리는 검불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평소에 늘 주의하고 경계하면서 누군가를
‘당하게’ 하지 않는 행실을 이어감으로서 장차 내가 ‘당할’모양들의 기초와 근본을 마련하여 놓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이러한 사람이 과연 지혜로운 사람이고 세상의 모든 불안하고 어수선한 와중에도 평안을 누리는 복된 사람입니다.
산골어부 2018111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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