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국종의 탄식.

덕 산 2018. 1. 8. 10:07

 

 

 

 

 

 

 

 

박천복(yor***) 2018-01-08 07:54:29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이국종 교수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과 얼마 전 목숨을 걸고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을 넘어온 북한병사의 총상을 치료한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장이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외상센터에서 일하며 우리사회의 바닥을 봤다고 생각한다.’

그가 일하는 외상센터엔,

큰 사고로 육체가 깨지고, 찢어지고, 부러진 환자들이 오는 곳이다.

 

그리고 그 환자들에 딸린 여러 계층의 가족,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며,

의사와 환자, 치료과정, 치료비, 가해자와 피해자, 경찰과 검찰의 모든 얽히고설킨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인간군상의 막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바닥인 것이며 그가 그 바닥을 봤다는 것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인간군상의 행태를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그 바닥은 그래서 현실적이고 상징적이다.

그는 또 말한다. 사람들은 돈이 걸리면 목숨을 건다.’

돈에 민감하고, 돈 되는 일이라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빈다는 얘기다.

돈 있고 사람 있는시대의 모습인 것이다.

사실 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돈은 또 중립적이기도 하다.

 

잘 벌고 잘 쓰면 선 이지만 그 반대는 악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선, 악과 관계없이 돈을 얻기 위해 생명까지 건다는 얘기다.

그는 계속해서 말한다. ‘ 그러나 돈이 안 되는 일에는,

윤리적 측면에서는, 한국은 무너지고 있다.‘

 

윤리()가 무엇인가.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하는 도리다.

윤리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희생, 봉사정신, 선을 지키려는 마음과 행동이 있어야 한다.

이국종은 그것이 지금 무너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자기가 일하는 그 막장에서의 인간군상이 보이고 있는 작태가 그렇다는 얘기다.

사실은 무서운 얘기다. 윤리가 무너진 사회에 무엇이 남겠는가.

그걸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 있고 돈 있다가 아닐까.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특히 가슴 아픈 얘기다.

특히 공적영역에 주인이 없다.

세금, 돈이 걸리지 않는 영역에서 묵묵히 자기일하는 사람, 별로 못 봤다.

애초에 한국이란 나라는 진정성이 없는 국가다.

 

너나 나나 똑같다.‘

진정(眞情)이 무엇인가.

참되고 진실한 정이나 마음이며 진실 된 사정이다.

진실은 양심에 비추어 거짓이 없는 사실,

감추어지거나 왜곡되지 않은 사실이다.

 

이게 없다는 것은 거짓으로 속고, 속이며산다는 얘기다.

우리사회의 신뢰도가 낮은 게 이 이유다.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가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공적영역에 주인이 없다는 게 그 뜻이다.

국가의 예산이 국회심의과정에서 찢어지는 과정을 보면 세금은 정말 임자없는 공돈이다.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다.

공적인 분야가 주인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손님이 되어 책임을 안 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동체가 합리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대표적인 후진국 현상이다.

 

지금 일본에 사무라이정신은 살아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일본에서 평생을 살고 있는 교포세분이 각기 다른 대답을 했다.

지금도 일본사회에는 사무라이정신이 있다.

일본인들은 공()을 사()보다 앞세운다.‘ 놀라운 관찰이다.

 

우리와는 정반대이기에 더 충격적이다.

사무라이정신은 직업정신에 남아있다.

전문성에서 그렇다. 그건 일종의 책임감이다.‘

일본제품이 정교하고 효율적이며 우수한 것이 사무라이정신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일본인들은 어려서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그게 지금 남아있는 사무라이정신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얘기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들은 아주 상대적이다.

폐를 끼치지도 않겠지만 받아주지도 않는다.

세련된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무모할 정도로 거칠다.

배려하는 부분이 크게 모자라고 있다.

그래서 일상을 살기가 힘들고 피곤해진다.

 

우리에게도 분명히 전래의 선비정신이 있었다.

선비정신이란,

의리와 지조를 중요시하고 신분에 따라 지켜야할 도리에 생사를 걸었다.

시대적 사명감, 책임의식이 강했으며,

청렴, 청빈을 우선했고 검약, 절제했다.

 

상부상조, 평화공존의 성리학적 이념에 투철했으며 이런 정신은 개인생활은

물론, 농촌공동체뿐 아니라 국가사이에도 적용된다고 믿었다.

율곡은 선비정신을 이렇게 정의했다.

마음으로 옛 성현의 도를 사모하고

몸은 유가의 행실로 신칙(申飭단단히 타일러 경계하는 것)하고,

입은 법도에 맞는 말을 하고 공론을 지키는 자다.‘

 

결국 선비정신이란 신사도.

가장 긍정적인 인간자세이며 행실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이런 선비정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금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중요한 선비정신이 끊어진 것은 일제식민시절과 광복 후의 혼돈,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정부의 수립으로 전통적의미의 계층, 계급구조가 해체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전통적인 정신문화는 무엇인가.

유형은 여러 가지고 설명도 다양하겠지만 그중 하나가 노비문화, 노비정신이다.

노비(努婢)는 남종과 여종의 총칭이다.

 

노비는 종이며 종은 노예다.

조선조의 노비숫자는 학자에 따라 크게 갈라진다.

삼분의 일 이라는 주장이 있고, 절반이 노비였다는 연구도 있으며,

삼분의 이가 노비였다는 학설도 있다.

공통점은 백성 중 노비의 숫자가 거의 절반에 육박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그 숫자가 적었던 선비정신의 사대부(양반,선비)계층은 그 이념과 사상의 보존,

전달이 약했던 반면, 절대다수의 노비문화, 노비정신은 일상 안에 쉽게 착근(着根) 할 수 있었다.

 

 

 

 

 

 

그게 지금의 우리사회이며 일상이다.

이국종교수가 말하는 바닥의 얘기는 오늘의 노비문화,

노비정신이 일상 안에 구현된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부분적인 관찰이라 해도 뿌리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

노비 종 노예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가.

주인의식(主人意識)이 없는 것이다. 그걸 노예근성이라고도 부른다.

 

공적분야에 주인이 없다는 얘기가 그 뜻이다.

주인의식이 없으면 책임감도 없다. 따라서 매사를 적당히 처리한다.

뿐만 아니라 극도로 이기적이 되어 자기를 위해 거짓을 말하고 남을 속인다.

자기 것을 챙기는 물욕이 강할 수밖에 없으며 쉽게 배신하고 비열해지고 비겁해진다.

 

진정성이 없다는게 그 뜻이다.

우리사회가 계속해서 세계최고의 진학률을 기록하는 것은 그게 신분상승을 시도

하는 계층적 구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족보가 중요시되는 것은 족보만이 그 가문이 노비가 아니었음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노비문화 속에 살면서 그것을 부인하려는 이 이중성이 바로 오늘의 모순된 현실이다.

 

세계2차 대전 이후,

과거 식민지였던 독립국가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물론 거기에는 이승만, 박정희 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민족의 자질이 우수한 면도 큰 이유가 된다.

이제는 우리도 우리 일상 안에 스며있는 노비정신을 극복하고 선비정신을 복원 할 때도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계의 선비정신발굴과 정리가 시급하며 이를 학교교육에 접목시켜야 한다.

일본에 전통적인 사무라이 정신이 있다면 우리에겐 선비정신이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선비정신을 바탕에 가지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가치관 정립이 없이는 발전할 수가 없다.

 

이 선비정신은 그 바탕에서는 같은 정신이지만

오늘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걸 맞는 변화는 가져야 한다.

말하자면 선비정신의 현대화인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정신도 현대화해서 일본인의 일상 속에 있다.

특히 시기적으로 지금이 더 그렇다.

 

사람들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그것을 모두 잃고 난 후에야 깨닫는다. 서양격언.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