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차카게 삽시다.

덕 산 2017. 12. 15. 10:07

 

 

 

 

 

 

 

 

오병규(ss8***) 2017-12-13 20:34:33

 

P와의 인연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와의 인연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인천 모처에서 하꼬방 같은 공장을 하고 있을 때 P를 만났다. 100% 수출로 공장을 꾸려 나갈 때 그는

내가 거래하던 선박회사의 담당이었다. 내 공장의 담당으로 왔을 때 그는 그야말로 사회 초년생인 프레쉬맨이었다.

그가 담당으로 배치 될 때만 하더라도 공장은 그야말로 굴러간 게 아니라 날아갔다. 수출물량이 하꼬방 같은

공장에 비하면 엄청난 물량의 컨테이너가 소용되었다. 매월 선임으로 지불하는 금액이 클 수밖에.

 

수년을 잘 유지해 왔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공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부도가 날 때 다른 것도

다 그러했지만 P가 근무하는 선사(船社)에 지불하지 못한 거액의 선임이 문제였다. 정말 붙임성 있는

친구였고 매사에 의욕적인 친구였는데... 나 때문에 다니는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기가 꺾일 수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구제해 주고 싶었다. 거액의 부도를 냈지만 부정수표 단속법 위반 법집행

유예기간 동안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 친구가 다니는 선사의 부도를 깨끗이 정리해 주었다.

 

아무튼 56년 지난 후의 김포공항. 재기를 꿈꾸며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가는 길이었다. 출국 게이트 앞에서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혹시 오 사장님 아니십니꺼?”라며

거친 부산사투리로 말을 건 낸다. 돌아보니 세상에...P.

 

그 반가움이란...수인사를 닦고 알고 보니 그도 같은 목적으로(당시 프랑크푸르트엔 세계적으로 가장 큰

소비재 전시회가 매년 개최 되었었다)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내가 그에게 끝까지 지켜 준 의리(?)

또는 신용 때문에 회사 생활을 잘할 수 있었고 과장 승진까지 하고 무역꾼들의 뒤치다꺼리만할 게 아니라

본인도 직접 무역을 해 보고 싶어 모 중견 업체로 이직을 하여 당시는 이사()직함을 가지고

같은 목적지로 출장을 가는 길이었다.

 

업종은 달랐지만 전시회기간 동안 같은 호텔에 머물며 동거인처럼 붙어 다니며 업무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독일맥주로 지참한 우리 소주로(옛날엔 견본 발송 시 팩소주와 오징어를 함께 발송했었음)목을 축이며 정말

많은 얘기들을 나누는 가운데 그가 나를 중국진출(그가 다니는 회사는 한. 중 수교 전부터 진출해 있었음)로 인도했고

그런 과정에서 그의 도움이 정말 컸었다. 그 후로 그와는 호형호제를 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만약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더라면? 그날 김포공항에서 멱살잡이를 하지 않았을까?

출장은커녕 출국과정에서 개망신을 당하지 않았을까? 설령 개인적으로 그런 과정이 없었더라도 그가 내게

어떻게 대했을 것인지 미루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특히 오늘의 내가 있도록 인도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죄 짓고 살지 말고 차카게 살자는 얘기다.

 

 

 

 

 

 

오래 전 중국 출장에서 우연히 수집한 견본을 아내의 가게에 진열한 결과 어떤 업체가 보고 그기에 자신들의

디자인을 보탠 새로운 견본이 홈쇼핑에서 대박을 쳤다는 것이다. 완판. 그 방송을 캐나다에서 인터넷으로 보았다.

속으로 재 주문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귀국하자마자 예상대로 첫 주문 보다 량은 많지 않아도 또 주문이 왔다.

여독도 풀리기 전 급히 중국엘 왔는데... 워낙 수요가 많지 않은 아이템이라 지난번에 거의 싹쓸이 하다시피 해서

동일 제품을 아무리 찾아도 구할 수가 없다.

 

가로250m x 세로250m 정방형의 상가건물엔 수천 개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이틀째 돌아다녔지만 구하고자 하는

아이템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낭패다. 간단하게 물건이 없다고 통보하면 그만일 수도 있다. 아무리 뒤져도

없는 물건을 직접 만들 수도 없고....그러나 상도의가 그렇게 무책임 할 수 없는 것.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70 노구의 다리에 쥐가 오를 것 같아 상가 안의 쉼터 벤치에 잠시 앉아 쉬며 바로 앞의

어떤 상점 안을 초점 잃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여인네와 눈이 마주쳤는가 싶었는데 그녀와 내가

서로 이구동성으로!?’라며 놀라워했다. (10년은 훌쩍 넘은 듯하다. 보따리장사를 할 당시 모든 제품은

산동성 칭따오(물론 주거지와 사무실도...)에서 구입하고 국내로 보내졌었다. 당시 나의 주 거래처였고

그들과 나는 다른 상인들의 질시나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큼 큰 거래를 했었다. 역시 작지만 오늘의 내가

있도록 기여한 업체다. 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내가 있었기에 얼마간의 부를 창출하고 지금은(어제 들은 얘기로...)

칭따오에서 취급하는 업종 중 가장 큰 업체가 되었다고 자랑한다.)

 

반가움이란....서로 악수도 모자라 허그를 하고...어쨌든 부부가 함께 물건구입을 하러 지금 이곳에 와 있단다.

정담을 나누고칭따오에 놀러 와! 한국에 오면 크게 대접하마! 니 외이프 안 늙는다. 너도 그대로다등 서로를

격려하며 상점 안을 훑어보는데, 세상에~! 내가 구하고자 하는 제품이 그곳에 있다. ~! 하느님!

그들과는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졌다.

 

원하는 수량의 4분의3밖에 없다. 그리고 가격이 서로 상충 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곳에 처음 가는 상점이지만

그들이 나(아내)의 크기를 엄청 소개해 준다. , 첫 거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 주며 가격의

접점을 찾으라는 조언을 해 준다.

 

날이 새면 나머지 4분의1 발품을 팔아서 찾아 나설 것이다. 가격은 어떻게든 접점을 찾을 것이다.

설령 밑지는 한이 있어도 우리 물건을 찾는 고객에게 편의를 제공할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뇌리를 친다.

내가 그들에게 죄 짓지 않았기로 황천후토 천지신명이 나를 그 벤치로 인도 하신 것이다.

또한 죄 짓지 말고 차카게 살자는 얘기다.

 

덧붙임,

오늘의 나를 있게 한 P를 안 만난 지 34년 된 거 같다.

아들놈이 장가갈 때가 됐는데....

이번 계기로 귀국하면 연락 한 번 해 봐야겠다.

말로만 죄 짓지 말라고 하며 내가 너무 무심했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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