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흥서(khs***) 2017-12-13 14:02:53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그의 고향이 이곳이 아닌 강원도라며 아버지 때에 이곳에 이사를 와
지금 것 살았다고 했었다. 그 사람은 도자기를 만들어 납품업자에게 주문한 물건을 대어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워낙 사람이 착실하고 진실해 나는 그에게 "당신은 착하고 진실해서 일감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했었다
"법이 없어도 살 사람 " 이라는 별명이 그에게 닉네임처럼 붙어 다녀 그 사람 을 바라보면
그의 얼굴엔 선한 인상과 착한 눈빛이 가득 담겨 있다
꼬맹이였던 그의 아들이 결혼을 한다며 그가 청첩장 을 들고 왔다. 그와 조우 한지는 꽤 오래전에 일이였고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고 나는 내 늙어가는 시간을 조율 해가며 발걸음 의 넓이를 줄여가고 있어 예전처럼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저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형님이 주례를 서 주셔야겠어요.."
그의 어색하고 순박한 미소를 보며 잠시 생각을 멈추고 있었다.
"나처럼 늙은 사람이...주례를 서면....되려나..?"
주례를 승낙하고서 많은 고민을 했다. 지난 시간 속에 주례를 자주섯었다. 내가 대학 강단에 선 제자들이
찾아와 부탁을 했거나 후배의 아들 또는 이런 저런 사연으로 주례를 섰지만 언제부터 인가 나 자신의
사회 참여가 현저히 줄어들어 갈때 나는 조용히 나의 삶을 관조하며 비우고 줄임이 나를 다독여주는
비법 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에 그의 부탁을 선 듯 승낙하지 못 했었나보다
한 달도 더 남은 그날을 위해 책을 읽고 지난날의 주레사를 되새겨 보며 마음의 부담을 줄이려 노력을 많이 했다.
5분이 넘는 주례사는 신랑과 신부에게 고통을 주는 거라는 이야기도 읽고 지나간 시절의 주례사들을
찾아 읽으며 내 마음에 흡족히 다가오지 않아 주례사를 직접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번을 쓰고 읽으며 줄이고 다듬었다. 마침 또 주례의 부탁이 들어와 "이참에 전속 주례로 나서면 어떨까? " 하는
농담을 듣기도 했다. 주례사를 줄이고 다듬어 내 늙은 머릿속 에서도 잊혀짖 않을 정도의 간결함 말들을
정리해두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어른이 되면 주장을 할 권리를 찾기 보다는 어른이 됨으로 생기는
책임과 의무를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살며 어른을 공경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국가와 나라에
기본적인 충성"을 주문하며 주레사를 마쳤다
같이 간 아내와 마주앉아 뷔페 로 차려진 음식을 고르다가 길게 늘어선 하객들의 모습을 보며 내 아들의
결혼식을 생각했다. 아들의 결혼식은 정말로 간단하게 치루었다. 호텔 의 작은 룸 하나를 빌려 양가
직계 가족만을 초청하여 겨우 30명도 안 되는 인원이 테이불을 마주하고 앉아 덕담을 나누며 가족의
잔치처럼 오랫동안 이야기도 나누며 나와 사돈어른의 덕담과 충고 로 즐겁게 끝냈었다. 길게 늘어서서
접시를 하나씩 손에 들고 뒷사람 에게 밀리듯 허겁지겁 음식을 담아 가서 먹은 모습이
조금은 불편해 보여 아주 작은 음식들 로 조금 입맛만 보고 나왔다
나라에서 작은 결혼식 을 권장 하지만 여전히 결혼식장은 사람들로 북적 거렸고 다음 예식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엉겨 붙어 정말로 장날 시장판 같은 모습 이였다. 즐거운 날이라 웃음소리가 많았고 화려한
옷들로 치장한 사람들의 모습에 가족 친지들과의 조우가 행복해 보이기도 했지만 이미 봉투만 전달하고
미리 밥만을 먹고 돌아간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음을 알고 우리나라 의 결혼식 문화 엔 진정한 축하
보다는 주고받는 일종의 거래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듯해 씁쓸하기도 했다.
몇 일후 그가 전화를 걸어 굳이 집으로 오겠다고 말해 시간을 잡아 그를 기다렸다. 보통은 주례를 서면
흰봉 투에 수고비를 넣어 전달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는 듯 했지만 나는 제자나 내 친 인척들에게서는
일체 사양을 했었기에 그가 집으로 오겠다는 말에 "그냥 밥이나 한번 먹지.." 라고 말했었다.
그가 들고 온 것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은 곡식 들 이였다.
이곳은 쌀의 주산지이기에 쌀이 아닌 특별한 것 들이였다.
"고향친구 가 유기농으로 지은 것들" 이라며 좁쌀. 표고. 마. 등 등의
귀한 농산물 들을 들고와 미안한 듯 머리를 조아렸다 .
"제가 배운게 없어....어찌 해야 할지 몰라..그냥 잔칫날 다녀간 고향친구 에게 갔다가 좋아보여서...
그냥...이런걸..." 이라며 말을 잊지 못하는 그에게 나는 손을 내밀어 잡고는 고맙다 는 말을 전했다.
명품 넥타이 나 벨트나 셔츠나..그런 것 들 보다 더 귀한 주례 답례품 을 받게 되어
오랫동안 그를 기억할 것이고 그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 마음을 먹고
그를 순수한 그의 쑥스러워 하는 눈빛을 바라보았다.
착하게 사는 법을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 같음으로 그의 말투나 눈빛에 가득한 진심을 이해하고
놓치지 않고 담아두었다. 겨울이 지독한 심술을 부린다. 그가 도자기 접시에 쓰고 싶은 게 있으면
쓰러 오라 연락이 왔다. 지워지지 않는 좋은 글을 적어 몇몇 잊혀지지 않고 그리운 사람에게
선물이나 할까 생각하다 잠시 멈추었다. 그 역시 공연한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만들어지면 전해주어야 하고 받은 사람이 가치를 인정해야 함에 나는 그것이 조금은 의심이 들어
지금 그 일을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어 두었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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