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불성"을 보지 못하는 이유 / 법상스님

덕 산 2025. 10. 17. 18:23

 

 

 

 

"불성"을 보지 못하는 이유 / 법상스님

 

사실 평화로움과 고요한 침묵을 누릴 수 있는 감각은

이미 누구에게나 주어졌다.

별도로 애써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평온의 감각을, 속뜰의 본래 향기를 되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냥. 있.어.야. 한.다.

  

무엇을 자꾸 하려 하지 말고,

무엇이 되려고 애쓰지 말고,

찾아나서지 말고,

 

지금 여기에,

 그냥 있으면 된다.

 

가만히 비추어 보고 그저 느끼면 된다.

 

깨달음이란 애쓰고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이미 구족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일 뿐,

그러나 보지 않는다고 법우(法雨)가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이란 것도, 명상이란 것도

별도의 노력을 통해

깨달음이나 내적인 평화를 얻어내는 일에 있지 않다.

 

애쓰고 노력하는 일은 마음을 번거롭게 하고,

현재의 나와 깨달음 이후의 나를 둘로 나눌 뿐이다.

 

그 어떤 노력도 수고도 던져 버렸을 때,

말 그대로 그냥 존재하기만 할 때,

그 어디로도 가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 멈춰 서 있을 때,

바로 그 순간이 명상이요 수행인 것이다.

 

명상이란 우리 삶에서 가장 단순한 것이며 명료한 것이다.

 

삶에서 번거로움과 노력과 집착들을 다 던져버리고

다만 존재하기만 할 때 삶은 더욱 더 깊어지고 온전해진다.

 

그동안 우리는 오히려 수고스럽고,

고통스러운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그 무언가를 통해서만 만족을 느꼈고

그러한 성취감만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참된 존재의 풍요는

성취와 노력과 애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유위(有爲)의 노력들을 다 놓아버리고 비워버려

아무 일 없는 순간,

그냥 있는 순간 찾아오는 것이다.

  

우리의 욕망과 집착, 노력과 수고가

본래 우리 안에 구족 되어 있는 밝은 불성이며 영성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하고자 하고,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찾아 나서는 것이다.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 이대로 완성된 존재라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고 꽉 차 있다는

그 사실을 믿지 않으려는 데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무언가를 얻어야 하고

무언가가 되어야만 행복할 거라고 믿는 것이다.

 

사실은 그 마음이 모든 괴로움의 주된 원인이다.

 

어떻게 하면 잘할까를 생각지 말고,

어떻게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

  

꼭 해야 할 것이라도 함이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치라도 머무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즉, 일을 하더라도 그 일에 집착이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집착 없는 행동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으며,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

 

그저 그 순간 행함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다.

티끌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집착 없는 행은 과거를 남기지 않고

오직 현재의 순간만을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살 수 있게 해 준다.

매 순간 온전한 휴식을 가져다준다.

 

일을 하면서도 함이 없이 하면

그것은 휴식의 순간이 된다.

 

그래서 함이 없음을 행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수행자의 일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을 잘하는 것보다 본래 일 없는 것이 더 근원적이다.

 

무위로 행하라는 말이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하려고 하는 마음,

되려고 하는 마음만 놓고 그냥 푹 쉬면 되는 것이다.

 

잘 쉬는 일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그저 다 놓아버리고 푹 쉬기만 하라.

 

우리 지친 영혼에 맑은 휴식을 주자.

 

 - 법상스님의 목탁소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