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의 질문 / 마종기
그러면 이제 나는 누구인가.
겨울바람에 피부가 터진
말채나무가 대답도 없이 웃는다.
꿈꾸는 사람은 행복하다.
환갑 넘은 바람 몇 개가 일어나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게으른 열매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라며
낮은 하늘을 흔들어댄다.
이 추위를 보내면 한 세월이 가고
하얀 말채나무 꽃이 온몸을 덮는다니
그때면 내 뼛속에 감추었던 우수의 철책 거두고
정처 없던 긴 여행을 마무리해야지.
늙은 새 한 마리가 날갯짓 멈추고
얼어버린 하늘을 겨우 넘어가는가.
하늘이 늙은 새를 안아주고 있는가.
그러면 나는 이제 누구인가.
완전하다는 것도 분명하다는 것도
빈 말채나무에서는 보이지 않고
맑고 푸르른 유혹의 발걸음이
겨울이 끝나는 날처럼 따뜻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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