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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 정한아

덕 산 2024. 8. 9. 09:57

 

 

 

 

 

폭염 / 정한아

 

도서관 뒤뜰엔 잊혀진 사상처럼

이끼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소태를

얼마나 오래 머금을 수 있는지

 

붓꽃과 익어가는 여주와 박꽃과 봉숭아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눈으로만 먹을 수 있는

빛깔들

맛을 보면 도망할 육식동물들을 위해

고통 없는 선을 위해

아름다운 착한 것이 있어야 할 텐데

 

어쩌나, 가물어 단

과일을 크게 베어 물면

소리 없이 가능한 한 멀리 내어 뱉는

씨앗 같은 문장부호들

 

왜, 죽음의 징후—꽃들은

절박할 때만 피나, 왜,

아름다운 채 삼키면 치명적인가, 왜,

도서관 뒤뜰엔 아직도 잊혀진 사상이,

 

웬 조그만 노인이, 우산이끼처럼 까라져

아직 파란 여주를 씹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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