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 정한아
도서관 뒤뜰엔 잊혀진 사상처럼
이끼가 드문드문 자라고 있다
사람들은 소태를
얼마나 오래 머금을 수 있는지
붓꽃과 익어가는 여주와 박꽃과 봉숭아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눈으로만 먹을 수 있는
빛깔들
맛을 보면 도망할 육식동물들을 위해
고통 없는 선을 위해
아름다운 착한 것이 있어야 할 텐데
어쩌나, 가물어 단
과일을 크게 베어 물면
소리 없이 가능한 한 멀리 내어 뱉는
씨앗 같은 문장부호들
왜, 죽음의 징후—꽃들은
절박할 때만 피나, 왜,
아름다운 채 삼키면 치명적인가, 왜,
도서관 뒤뜰엔 아직도 잊혀진 사상이,
웬 조그만 노인이, 우산이끼처럼 까라져
아직 파란 여주를 씹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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