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마지막세대의 증언.
박천복 2024-06-24 08:05:07
6,25 전쟁은 1950 년 6 월 25 일 일요일새벽 3 시에
북한군이 암호명 ‘폭풍 224’라는 사전계획에 따라
북위 38 도선 전역에걸쳐 선전포고없이 대한민국을 기습남침하여
발발한 민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이다 .
1953 년 7 월 27 일 , 휴전협정이 조인될때까지 3 년 1 개월간 전투가 이어졌으며
유엔군 , 조선인민군 . 중국인민지원군간 판문점 휴전협벙이 조인되어 전쟁이 멈췄다 .
따라서 엄격히 말 하자면 한국과 북한 사이에는 염연히 전쟁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은 쌍방 합의하에 휴전중인 것이다 .
때문에 언제라도 휴전당사자 어느 한쪽이 공격을 시작하면 그대로
전면전이 계속될 수 있는 화약고인 셈이다 .
6,25 전쟁은 ,
군인 , 경찰 , 민간인포함 1.545.257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미군은 137.250 명의 사상자를 냈다 .
지금 80 세후반 이상의 노인들은
철이들어 6.25 전쟁을 몸소겪은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다 .
인민군의 탱크가 시내에 진입하자
모두가 황망한 가운데 보따리를 싸들고 피난길에 나 섰다 .
이미 남쪽을 향한 신작로엔 사람들이 꽉 찼으며
어떤 젊은아낙은 그 북새통에 애기대신 베개를 업고 피난길에 나 서기도했다 .
사람들의 지적을 받고서야 자기의 실수를 알고 미친 듯이 애기이름을
부르며 사람들을 헤치면서 되돌아 가기도했다 .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초저녁 ,
시골농가의 추녀밑에서 비를 피해 서 있는 우리가족 4 명은
춥고 배가 고팠지만 갈데도 먹을 것도 없었다 .
결국 그 농가의 헛간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그댁 어르신의 배려로
집에 돌아갈때까지 3 개월여를 그집 사랑채에서 살았다 .
어머니는 그집 부엌에서 일을 도왔고
나는 지게를 지고 낫을가지고 그집 애들과 함께 때감을 가지러 산에
갔으며 그때 풀을베다다친 손가락의 상처는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
밭에서 김을매고 , 논에서 피를뽑는일은 아주 힘들었으며 지게로 져나르는 무게도 대단했다 .
가장 큰 문제는 먹을게 부족한 것이었다 .
보리밥도 없어 나중에는 야채와 밀가루로 쑤는 풀데기로 끼니를 잇기도 했다 .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바뀌자
나는 혼자서 집을 살펴보기위해 걸어서 인천으로 갔으며
집을 살펴본후 저녁에는 아버지친구의 집으로 갔다 .
그댁에서 여러달만에 쌀밥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맛있고 부드러운 쌀밥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
그 이후 .
나는 쌀한톨 , 밥한알도 버리지않고 깨끗이먹는 습관이 생겼다 .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온후 ,
아버지의 동료들이 와서 부친의 전사소식을 전했고 어머니가 기절하는 것을 지켜봤다 .
중공군의 전쟁 개입으로 1.4 후퇴가 시작되자 우리는
미군의 LST 를 얻어타고 부산으로 피난갔다 .
용두산 산자락의 쓰레기장을 몇가족이 함께 치우고 거기에 가마니와 대나무로
여러채의 가마니집을 지어 기거했다 .
그해겨울 , 부산은 유난히 추웠고
무엇보다 물이 귀해서 아주 먼곳까지 가서 지게로 물을 날라다 썼다 .
각박했던 부산인심도 기억에 남아있다 .
어머니는 다른분들과함께 길가 담밑에서 국밥장사를 시작했고
나는 영도다리밑에있는 양과점 ‘천사당 ’ 에서
먹고자고 일주일에 쌀 소두한말을 받고 고된일을 했다 .
도너스를 굽느라 팔이 익었으며
빙과류를 만드는 기계를 지켜보느라 밤을 새웠으며 나중에는 모찌를 싸는 기술자가 됐다 .
그때 부산에 있는 전신주들엔 온갖사람들이 서로를 찾는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으며 우리도 그 전단지를 통해 북한에서 부산으로
피난온 외숙부와 외사촌들을 만났다 .
바만오면 물이새는 가마니집은 유난히 추웠으며 학교는 갈 생각도 못하고 살았다 .
나는 주말이면 양과점에서 생기는 생과자 부스러기들을 큰 봉투에 담아
집에 가져갔으며 피난동네 꼬마들은 그걸 얻어먹으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모두가 먹고살기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뛰어다녔으며
빨리 전세가 역전되어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
하수구에 버려져 퉁퉁부운 시체들 ,
팔에 붉은완장을 차고 무섭게 설치는 토착빨갱이들 ,
공기를 찢으며 날가는 포탄소리 ,
목표물 가까이에 있다 폭격후의 무서운 후폭픙에 밀려 죽을뻔했던일 ,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춥고 배고픈것이었다 . 그건 마지막이었다 .
전쟁은 사람을 포함 , 모든 것을 파괴한다 .
6.25 전쟁의 폐허라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
그야말로 국토가 초토화 됐었다 .
지금 우리는 세계 10 위권의 경제대국이지만 ‘휴전상태 ’임을 잊으면 안된다 .
이제 전쟁이 다시 발발하면 핵과 화학무기가 쓰일 것이다 .
전선도 따로 없을것이며 파난갈일도 없을 것이다 .
따라서 우리의 ‘안보개념 ’을 재 점검할 필요가 있다 .
특히 주한미군에 의지하는 나약함을 버려야한다 .
결국 , 우리도 우리자신을 지키기 위해 핵을 가져야한다 .
지금과같은 비대칭으로는 계속 그들의 협박에 시달리게된다 .
그리고 최선의 방법은 피차 평화를 지키는 일임은 말할 것도 없다 .
전쟁은 너무나 무섭고 처참한 것이기에 무슨수를쓰든 피해야한다 .
6.25 전쟁은 지나간 전쟁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있는 전쟁이다 .ㅡ yorowon.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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