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글

마음 넉넉한 사람들 / 엄상익

덕 산 2024. 4. 19. 08:45

 

 

 

 

 

마음 넉넉한 사람저녁무렵 아내가 게가 먹고 싶다고 해서

묵호항 근처 어시장에 게를 쪄서 파는 식당들을 돌아봤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장소였다.

새로 인테리어 한 깨끗한 식당 2층으로 올라갔다.

아내와 나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 나는 늦게 먹은 점심이 소화가 덜 되서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았다.

게를 넣은 라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지만 아내가 먹을 정도의 양과

조금 보태 자리값 정도는 해 줄려는 생각에서 2인분 만 달라고했다.

주문 받으러 온 여자가
 “저희 식당은 셋트로 팝니다.

2kg 이상 게에 회와 멍게나 해삼 등이 곁들여 나오는데 한 셋트 기본 십칠만원 입니다.”
나이먹은 우리 부부가 먹기에 부담이 되어 아내가 말했다.
“게만 1kg만 주문할 수는 없을까요?

자리값이 안되면 쪄주시면 사가지고 가서 집에서 먹을께요. 말하니까

“그렇게는 안되겠는데요.”

여자는 그들이 정한 양과 가격으로 먹지 않으면 나가라는 눈치였다.

우리 부부는 멋적게 그 음식점 을 나왔다.
아내가 나를 보고 말했다.

“들어갈 때부터 헐렁하게 옷을 입은 우리 부부를

돈이 없게 보고 마땅해 하지 앉는 눈치 였어.”

나는 북평의 5일장에서 파는 오천 원짜리 반바지와 싸구려 셔츠를 입은 그런 차림이였다.

우리는 다시 나와 식당가를 걷다가 허름한 가게로 들어 갔다.

안쪽 탁자에 남녀 한 쌍이 앉아 있고 우리는 문쪽에 자리잡고 앉았다.

주방앞에서 젊은 남자가 스팀에 찐게를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담고 있었다.
아내가 그걸 보고 그 남자에게 말했다.

“우리도 저렇게 주문하고 싶은데요.”
“지금 게가 없습니다.”
“지금 요리하시는 건 뭐죠?”
“이건 저쪽 손님이 주문해서 옆집에서 사 가지고 와서 찐 겁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주시면 안돼요?”

아내는 오늘따라 게를 몹시 먹고 싶은 모양이다.
“게를 파는 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게철이 다 지났습니다. 러시아 수입게도 없습니다.”
“그러면 할 수 없죠. 곰치국 2인분 주세요.”

아내는 서운한 표정이 역력 했다.

잠시 후 우리 탁자 위에 있는 냄비에서 2인분 곰치국이 끓기 시작할 무렵에
가게 일하는 남자가 부드러운 흰 속살이 보이는 빨간 게가 담긴

접시를 들고와서 우리 부부의 탁자 위에 놓으면서 말했다.

“저쪽 계신 손님이 잡수시라고 주시네요.”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랐다.

저쪽 탁자에 앉아있는 손님을 보았다.

오십대 중반쯤 되 보이는 남녀 였다.

우리보다 한참 나이가 젊은 모르는 분들이었다.

그분들도 우리를 모르기는 마찬가지 인데 그냥 넙죽 받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들을 향해 “감사합니다” 라고 인사를 하자
“아닙니다. 인생 나누며 사는거죠.” 라고 대답이 왔다.

남자의 짧은 대답이었지만 자신의 철학을 즉각적인 선한 행동으로 나타내는 모습이 특이했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들의 상을 보니까 국물이 없어 팍팍할 것 같아 보였다.

아내가 큰 그릇을 하나 얻어 끓는 곰치국을 담아 그 남녀 에게 가져다주었다.

잠시 후 그 남자가 화장실을 갔다가 돌아가면서 내 옆을 지날 때였다.

내가 그를 보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넉넉 하십니까?”
“아, 아닙니다”

그가 당황한 듯 오히려 고개를 깊게 숙이면서 인사하고 자리로 갔다.

나는 그가 보낸 게에 밥 한 그릇을 비벼서 뚝딱 해치웠다.

그 속에 섞인 그의 맛갈스런 양념같은 마음이 더 향기로운 것 같았다.

뭔가 인정의 빚을 진 느낌 이었다.

다시는 보기 힘든 그분들에게 되갚을 기회가 없었기에 음식점을 나오면서 계산할 때

그 남녀가 먹은 맥주와 소주값을 조용히 지불하고 나왔다.

흐뭇한 저녁이었다.

우연히 스치고 지나가는 남이라도 서로 그렇게 情을 나누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 옆은 진홍색의 황혼이 바다를 물 들이고 있었다.
서로 집단을 이루어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 같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