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댁의 자녀는 안녕하십니까? / 법상스님

덕 산 2024. 3. 8. 08:44

 

 

 

 

 

댁의 자녀는 안녕하십니까?

 

-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 문제 -

 

무릇 자식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가 만든 명품 중의 명품입니다.

이 명품이 부모를 빛나게 해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으로 키우든지 사랑으로 키우든지 부모가 눈감고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자식으로

성장해 준다면 이 보다 더 고마울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앉으나 서나 자식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부모를 위한 한 마디

"과연 나의 자식 교육에 대한 정답은 무엇인가?"

 

예나 지금이나 자식의 교육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도 그랬습니다. 지금 댁의 자녀는 안녕한지 묻고 싶습니다.

과연 평안한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넘어 방황하고 있지는 않은지 연필로 고기를 그리고

머리와 꼬리에 생각을 적다보면 TQC가 나타날 것입니다.

 

생산성 향상과 문제점을 찾아보는 QC활동.

댁의 자녀에게도 미래 생산성 향상을 위한 TQC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학교에 가고 학교 마치고는 가물거리는 정신으로 학원에 가고

또 집에 와서는 남은 과제를 정리하고,,,, 사람인지 기계인지 분간이 안 갈 것입니다.

어찌 보면 불쌍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안 일수록 자식은 그만큼 고달프게 공부에 매달려야 합니다.

 

없는 가정에서도 있는 여유 없는 여유를 쥐어짜서 한 두 과목 학원에 보냅니다.

부모는 자식 눈치를 자식은 부모 눈치를 보면서 말입니다.

무엇이 교육을 이 지경으로 몰고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비정상적이고 비효율적인

이런 교육 풍토를 언제까지 따라 가야하는지를 짚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미술학원, 음악학원, 태권도 도장에 보내는 것은 자식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그 투자가 자식이 사회생활을 할 때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되어지는 것은 알 수가 없고 평가할 수도 없습니다.

 

더더욱 편견의 지배를 받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식에게 해주지 못하는 죄책감도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다.

학업성적으로 비관하는 청소년이 우리들의 자식입니다.

내 자식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식입니다.

미래 부모를 먹여 살릴 귀중한 보배들입니다.

이런 보배들이 공부라는 중압감으로 미래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이 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등수에 울고 웃는 공부가 과연 행복이라는 선물을 안겨준다고 장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의 과거 추억을 생각하다보면 과거 자신의 환경을 자녀에 대한 교육열로 변하여

모든 인생을 걸고 쏟아 붓고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제철공장의 현장은 누가 맡을 것이며 전자제품 생산은 누가 들어가서 만들 것인가?

부모가 가지고 있는 과거 출세의 욕망을 자식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얻는다고 자식이 부모의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라 전체가 잘못된 교육열기로 망국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성인이 되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교육이 되고 있으며 넓은 의미의

교육이 아니라 공공기관,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교육으로 되고 있습니다.

 

사회와 부모들의 편향된 교육열기가 이제는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작용으로 나타나서 힘들고

인기 없는 직종에는 찬바람이 불고 그늘이 지는 모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사고와 교육이 자식들에게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조차도 규명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편한 직장, 높은 보수, 평생직장을 앞으로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까?

사회는 변하고 또 변합니다.

사회는 변하는데 교육은 미래 산업을 위한 인재육성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자식의 미래 행복과 연결되지 않는 교육은 낭비일 뿐 진정한 교육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영어권 중심의 교육이 언제까지 그 자리를 채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계는 미래를 항하여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 법상스님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