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격세지감.

덕 산 2023. 1. 3. 11:46

 

 

 

 

 

격세지감. 

 

박천복 2023-01-02 08:34:38

 

2023 년의 새해가 밝았다 .

간지로는 계묘년 (癸卯年 ), 검은토끼의 해다 .

한해가 지나니 나이를 한 살 더 먹어  87 세가 됐다 .

살아온 세월을 말 해도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

서울대 주경철교수는 지금의  80 대를

‘파란만장한 생애를 힘겹게 살아오신 어르신들 ’ 이라고 했다 .

파란만장 (波瀾萬丈 )은 ,

생활과 모든일에서 여러 가지 곡절이 많고 변화가 심했다는 뜻이다 .

나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일본소학교를 다녔고 ,

광복후에는 인민학교에서 김일성장군을 배웠으며

부모님을 따라 월남한 후에는 초등학교에서 이승만 박사를 배웠다 .

중학생때는  6.25 전쟁으로 죽을 고생을 했고 ,

춥고배고픈 자유당군대의 전방부대에서 사병으로 군 복무를 했다 .

제대후 대학에 복교하자  4.19 가 터졌으며 , 5.16 과  5.18 모두를 겪었다 .

산업화 시대의 직장에서는 월차 , 년차 , 휴가도 없이 별을보고 출 ,퇴근

하는  ‘일 ’ 속에 파묻혀 조국산업화에 청춘을 불살랐다 .

이는 지금도 자부심으로 내 마음속에 살아있다 .

 

격세지감 (隔世之感 )은 ,

그리 오리지않은 동안에 풍속이나 풍습이 아주많이 바뀌어서

딴 세상이 된것같은 느낌을 이르는 말이다 .

1960 년대 이후 ,

우리가 일궈낸 역사적인 성취는 ‘수직상승 ’ 이라는 표현이 맞다 .

성장률등 경제지표는 수백배 늘어났고 삶의질도 급격히 향상됐다 .

한국은행에 따르면 ,

1 인당 명목국내총생산 (GDP)는 경제개발 5 개년계획이 시작된  1962 년

1 만 3 천 800 원에서  2021 년  4003 만원으로  300 배로 증가했다 .

가계소득중 세금등을 제외한  1 인당 실질처분 가능소득으로 따져보면

1970 년도  23 만 1,000 원에서  2021 년  2231 만 7000 원으로 증가했다 .

100 배정도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

1966 년  5 만대에 불과했던 자동차 등록대수는  2,437 만대로 480 배 증가했다 .

 

경제성장은 국민들의 평균수명연장으로 이어졌다 .

1970 년  62,3 세였던 평균수명은  2020 년  83,5 세로 늘어났다 .

남자는  58,7 세에서  80,5 세로 ,

여자는  65,8 세에서  86,5 세로 늘었다 .

소득이 늘면서 평균수명도  20 세가량 높아진 것이다 .

반대로  60 여년동안 줄어든 지표도 있다 .

경작면적의 경우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빠져 나가면서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

1970 년  229 만 ha 에 달했던 경작면적은  2021 년  156 만 ha  까지 줄어들었다 .

수출로 나라를 세운다는  ‘수출입국 ’ 이라는 구호가 등장했던  1960 년대

이후 우리수출은  3,860 배 증가했다 .

한국은행에 따르면 ,

1965 년 연간수출액은  1 억 7,508 만달러 였는데  2021 년 수출액은

6,444 억  36 만 달러로 늘어났으니 정말 격세지감이 아닐수 없다 .

그래서 세계가 이를  ‘한강의 기적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

 

 

 

 

 

 

한편 격세지감은 각종수치보다는 의 ,식 ,주의 생활을 살펴보는 것이 훨씬 구체적이고 실감이 난다 .

먼저 의 (衣 ).

나는 중 .고교시절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해도 외투가없이 지냈다 .

지금은 모두가 다운자켓을 입고 있지만 그때는 외투가 워낙 비쌌기

때문에 살수가 없었고 대신 내복을 껴입고 겨울을 지냈다 .

30 도 소주가 어는날이 많았던 추위를 그렇게 견디며 지냈다 .

대학 4 년동안은 검게염색한 미군의군복을 입었고 신발도 검게칠한 워카를 신고다녔다 .

대한졸업후 직장에 첫출근하는날 , 비로서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고 단화를 신어봤다 .

 

다음이 식 (食 ).

쌀밥은 일년에 세 번 ,

설 , 추석 , 그리고 생일날만 먹어볼수있었다 .

고기도 마찬가지였다 .

그 외는 보리밥에 김치면 족했다 .

간식은 물론 없었고 보리밥도 굶지않고 배불리 먹을수 있으면 행복했다 .

보리쌀까지 떨어지면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다 .

단군이래 조선백성이 하루세끼 쌀밥을 마음껏 먹은게  1976 년 박정희의

통일벼 덕분이었으며 이는 그분의 가장 큰 업적이다 .

 

다음이 주 (住 ).

그때는 아파트는 거의 없었고 모두가 허름한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

주로 장작을 썼으며 초저녁에 군불을 때도 한밤중엔 냉기가 돌았다 .

겨울철이면 머리맡에 떠다놓은 자리끼 (마시는 숭늉 )가 얼었으며 이불은

덮었으나 잠자는 방의 온도가 영하였다는 얘기다 .

지금은 모무가 수세식화장실을 쓰고있지만 그때는 마당 한구석에있는 재래식 변소를 썼다 .

밤에 자다가 변소까지 갈 수 없어 방안에 요강을비치 , 사용했으며

아침이면 각방의 요강을 비우고 씼는일이 아녀자들의 큰 일거리였다 .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면 나같이 나이가 많은사람들에겐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

모두가 얼마나 잘 살고있는가 .

식당에서 쌀밥과 반찬을 남겨 버리는 것을 보면 하늘이 무섭다 .

잘 살수록 더 감사하고 , 절약하고 겸손하게 살아야 문화국민이다 .

우리는 모든게 너무 낭비가 심하다 .

교육이 잘못된 면도 크다 .

이게 단지 나이많은 늙은이의 노파심때문데 하는 잔소리일까 .

그렇지않다 .

사람이 올바로 사는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

 

 

음식을 버리면 하늘이 노한다 .ㅡ 법정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