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수(mok***) 2018-08-09 19:58:08
조선일보 2018년 8월 8일자 A8면에 작년 병원에서 76.2%가 임종하여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 회원국중 최고 수준으로써 네덜란드가 29.1%로 최하위라고 보도하였다.
오복(五福)중 마지막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은 제명대로 살다가 살던 집에서 편하게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임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대되는 말이 객사(客死)라하여 객지에서 죽으면 집안에 시신을
안치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교통사고사나 병원에서 임종도 객사에 속한다.
자식이 객지에서 있다가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면 그 날로 집으로
밤낮없이 급하게 돌아가는 것(급히 달아날 분奔)을 분상(奔喪)이라 하였다.
조선조 제7대 세조(14171468, 52세)의 왕비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14181483, 66세)가 「성종실록」
성종14년(1483) 3월 30일 충남 온양 행궁에서 병으로 승하하여 궁궐에 빈전(왕세자는 빈궁, 일반인은 빈소라 함)을
설치하지 못하고 동대문 밖 영순군 이보(永順君 溥)의 집에서 빈전을 설치 했다가 3달 후 인 6월 3일 발인하였다.
사대부 이상은 3개월 안에 장사지내고 서인은 달포가 지나 장사지내는 유월장(踰月葬)을 하였으며
부득히 질병이나 가난하여 죽으면 환장(還葬)이라 하여 빠르게 장사지냈다. 환장하고 미치겠네,
저 사람 환장했나봐, 더워서 환장하겠네 등 환장이란 낱말이 여기서 나온 말이다.
1943년 일제 때 부터 5일장 이내로 장사지내게 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살펴볼 때 5복중 하나인 고종명이 사라진 동시에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 임종 비율과 걸맞는 납골당으로 변화하였다.
죽어서는 마지막 이별의 예로써 따뜻하게 장사를 지내지 않는다면 박정하고 몰인정하여 산사람을
걱정스럽게 만드는 짓이라 하여 초상을 당하면 애통한 심정으로 정의(情誼)를 정중하고 경건하게
죽은 사람을 위해 슬픔을 극진히 다하여(喪則致其哀) 곡하는 것을 제일로 삼았다(處喪以哀爲主).
전통풍습을 따라 옷과 이불로써 시체를 염습하고 관과 곽으로써 더 두텁게하여 흙이 직접
살에 닿지 않게하여 빨리 썩지 않기를 바라면서 반드시 예로써 매장을 하던 것이 사라졌다.
왕조시대 신하가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힘을 다해 임금을 섬기겠다는 분골쇄신(粉骨碎身)이란
낱말이 현실로 나타난듯 유해(遺骸)를 가스불에 그을려 태워 분말로 만들어서 분골항아리에 담아 습기와
해충(박테리아, 기생충)이 우굴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납골묘(면적10㎡, 높이 50㎝, 비석높이 2m)에 안치한다.
또는 땅을 50cm이상 깊이 파낸후 흙과 분골을 1대1로 섞어 묻고 잔디를 심거나 뼛가루를 잔디주변에
뿌리는 잔디장을 하거나 1993년 스위스의 전기기술자였던 우렐리 자우터(Sauter)가 뼛가루를 나무밑에
뿌려 나무의 밑거름이 되어서 나무와 함께 상생한다는 수목장을 변형하여 나무에서 1.5m쯤 떨어진곳에
가로, 세로 깊이를 각각 50cm 땅을 파고 분골항아리를 묻는다.
- 출 처 : 조선닷컴 토론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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