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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렸던 그때를 아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금의 부모세대의
반만년 역사에 길이 빛날 조국은 불과 50여년전만해도 최빈국으로서 어느나라도 도우려 하지않아 당시 대통령이 온갖 수모를 각오하고 직접 다니면서 원조구걸이 있었음을 잊지말자!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힌 것이었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 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하기도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가 넘는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코리안 광부 만세!코리안 엔젤 만세! 박 대통령은 창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땡큐! 땡큐! 를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목이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이 말만을 반복하는듯 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앞에서.....
그리고, 고국에서 배를 굶고 있는 가난한 우리나라 생각에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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