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여름 / 정민기
우야(雨夜)
하지만 아무도 울지 않는 여름
열대야에 빗물이 가득 찼다
그 누구라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자귀나무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구름 사이 달처럼 잠깐이라도 빛나던 시절
매화가 진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황매실의 눈빛이 흐르고 있다
먹구름 종이 접듯 반쯤 접히자
달빛 우수수 떨어진다
서둘러 익은 열매 주워 담는데
손이 황홀하게도 빛나고 있었다
청포도 빛 녹음이 앞다투어 드리워진다
절정으로 치솟는 사랑이 홀로 까마득하다
번갯불 속에서 천둥소리가 태어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빗속 같은 마음
덩그러니 놓고 돌아서기가 미안한데
마음이 오늘따라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체크무늬 입은 꽃이 어디 없는지
두툼한 입술 한 잔 마시고 싶은
비 오는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