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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여름 / 정민기

덕 산 2025. 8. 5. 05:46

 

 

 

 

비 오는 여름 / 정민기

 

우야(雨夜)

하지만 아무도 울지 않는 여름

열대야에 빗물이 가득 찼다

그 누구라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자귀나무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구름 사이 달처럼 잠깐이라도 빛나던 시절

매화가 진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황매실의 눈빛이 흐르고 있다

먹구름 종이 접듯 반쯤 접히자

달빛 우수수 떨어진다

서둘러 익은 열매 주워 담는데

손이 황홀하게도 빛나고 있었다

청포도 빛 녹음이 앞다투어 드리워진다

절정으로 치솟는 사랑이 홀로 까마득하다

번갯불 속에서 천둥소리가 태어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빗속 같은 마음

덩그러니 놓고 돌아서기가 미안한데

마음이 오늘따라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아

체크무늬 입은 꽃이 어디 없는지

두툼한 입술 한 잔 마시고 싶은

비 오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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